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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선택을 '이게 왠지 더 나을 것 같은데' 로 하면 안 되는 이유

디자인 선택을 '이게 왠지 더 나을 것 같은데' 로 하면 안 되는 이유

디자인 선택을 '이게 왠지 더 나을 것 같은데'로 하면 안 되는 이유 오늘도 '왠지' 로 일했다 오전 10시. 팀장님이 배너 시안 3개 요청했다. A안, B안, C안 만들었다. 근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색 배치만 다른 건데 내가 봐도 비슷하다. 팀장님이 물으신다. "주니 생각엔 어떤 게 나을 것 같아?" "음... B안이요. 왠지 더 나아 보여서요." "왠지? 왜 나아 보이는데?" 대답 못 했다. 그냥 느낌이라고 말할 순 없잖아. "글자가 더 잘 보여서요..." 얼버무렸다. 팀장님은 고개만 끄덕이고 가셨다. 표정이 이상했다.점심시간에 혼자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B안이 좋다고 했을까. 진짜 이유가 뭐였지. 그냥 가운데 있어서? 무난해 보여서? 감각은 재능이 아니라 경험이다 선배가 커피 타러 가길래 따라갔다. "선배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디자인 선택할 때 어떻게 결정하세요?" 선배가 웃었다. "주니는 감으로 하지?" 들켰다. "네..." "나도 신입 때 그랬어. 근데 그게 문제야." 선배 말이다.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고. 수천 번 봐서 쌓인 거라고. "A안이 나은 이유가 '그냥'이면 안 돼. 위계구조가 명확해서, 여백이 적절해서, 타이포가 본문과 균형 맞아서. 이런 이유가 있어야 해." 나는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만들었다. 예쁘면 됐지 뭐. 그게 디자인 아닌가 싶었다.물어보면 무능해 보일까 봐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왜 이 여백이 20px여야 하는지. 왜 이 색이 #FF5733이어야 하는지. 왜 제목을 왼쪽 정렬하면 안 되는지. 근데 못 물어본다. 2년차인데 이것도 모르냐고 할까 봐. '감이 없네' 또 들을까 봐. 지난주 회의 때다. 마케팅팀에서 물었다. "이 버튼 색은 왜 파란색이에요?" 나: "음... 브랜드 컬러라서요." "그럼 여기는 왜 회색이에요?" "음... 눈에 덜 띄게 하려고요." "기준이 뭐예요?" 대답 못 했다. 그냥 했다. 선배가 대신 설명해줬다. "주요 액션은 브랜드 컬러, 부가 액션은 중성 톤. 위계에 따라 색상 강도를 조절했습니다." 아, 그런 거였구나. 나는 그냥 '이게 이쁘니까' 했는데.질문하면 무능해 보인다는 생각. 틀렸다. 근거 없이 일하는 게 무능한 거다. 클라이언트는 '왠지'를 안 산다 저번 달 외주 작업. 카페 브랜딩이었다. 로고 시안 5개 만들었다. 사장님이 물으셨다. "이 로고는 왜 이렇게 만드셨어요?" "감성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손글씨체 썼구요, 컬러는 따뜻한 느낌 주려고 브라운 톤으로..." "그런데 왜 손글씨체가 감성적인가요?" "음... 사람 손으로 쓴 거라서요?" "우리 카페가 감성적이어야 하는 이유는요?" 말문이 막혔다. 집에 와서 혼자 생각했다. 사장님 고객층: 30대 직장인. 위치: 오피스 밀집 지역. 니즈: 빠른 포장, 일 하면서 마시기 좋은 커피. 감성 카페? 아니잖아. 나는 내 취향으로 만들었다. 근거 없이. 결국 수정 3번 했다. 마지막엔 선배가 같이 들어갔다. 사장님이 선배 설명 듣고 바로 결정하셨다. "이 폰트는 가독성이 높고 전문적으로 보입니다. 컬러는 차분하면서도 프리미엄 느낌을 줍니다. 타겟층인 직장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디자인입니다." 같은 디자인이었다. 설명만 달랐다. 질문하지 않으면 2년차가 10년 돼도 신입이다 어제 점심시간. 같은 부트캠프 출신 친구를 만났다. 얘도 2년차. 근데 일하는 게 달랐다. "나 요즘 선배한테 하루에 10개는 물어봐." "진짜? 뭘?" "다. 왜 이 간격이 8px인지, 왜 이 색 썼는지, 왜 이 레이아웃 선택했는지." "귀찮아하지 않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선배가 그러는데, 근거 있게 물어보면 오히려 좋대. '얘 생각하면서 일하네' 이렇게 보인대." 나는 반대로 했다. 혼자 고민하고, 감으로 결정하고, 피드백 받으면 수정만 하고. 친구가 말했다. "주니야, 우리 경력 2년이야. 2년 동안 감으로만 일하면 10년 돼도 신입이야. 근데 2년 동안 이유를 배우면 5년차처럼 일해." 그 말 듣고 울컥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번 주부터 바꾼 것 월요일. 출근해서 노션에 페이지 만들었다. 제목: "내가 한 디자인 선택과 이유" 매일 기록한다.오늘 어떤 선택을 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근거가 있었는지 없었다면 뭐가 필요했는지화요일. 상세페이지 작업 중 막혔다. 제품 이미지를 왼쪽에 둘까 오른쪽에 둘까. 전엔 그냥 '왼쪽이 나을 것 같은데' 하고 했다. 이번엔 선배한테 물었다. "선배님, 제품 이미지 배치 여쭤봐도 될까요? 왼쪽과 오른쪽 중 어떤 게 나을까요?" 선배가 물었다. "주니는 어떻게 생각해?" "Z패턴으로 보면 왼쪽이 먼저 보일 것 같은데, 그럼 텍스트가 나중에 읽혀서 구매 유도가 약할까 싶어서요." 선배가 웃었다. "오, 생각하고 물어보네?" "네... 맞는지 모르겠어서요." "맞아. 이커머스는 보통 제품 이미지 오른쪽에 둬. 왼쪽에 핵심 정보와 버튼 먼저 보여주는 거지. 근데 제품이 비주얼로 승부하는 거면 왼쪽도 괜찮아." 10초 대화로 2시간 고민 끝났다. 근데 중요한 건 다른 거다. 선배가 나를 다르게 봤다. '생각하는 디자이너'로. 수요일. 팀 회의. 앱 리뉴얼 디자인 발표. 내 차례가 왔다. "이번 홈 화면은 카드 레이아웃으로 구성했습니다. 리스트보다 카드가 나을 것 같아서..." 말하다가 멈췄다. '나을 것 같아서'를 또 썼다. 다시 시작했다. "리스트보다 카드를 선택한 이유는, 타겟 유저가 20대 후반이고,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같은 카드형 UI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콘텐츠가 이미지 중심이라 카드 형태가 정보 전달에 효과적입니다."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좋아요. 계속해보세요." 발표 끝나고 선배가 귓속말했다. "많이 늘었네. 요즘 뭐해?" 매일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선배가 웃었다. "그래, 그게 디자인이야." 감각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지금 깨달았다. '디자인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수천 번 '왜'를 묻고 답하면서 만들어지는 거다. 선배는 감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그게 아니다. 너무 많이 물어보고 생각해서 이제 자동으로 나오는 거다. 나는 2년 동안 '왜'를 건너뛰었다. 그래서 아직도 신입처럼 일한다. 어제 저녁. 개인 작업 중 색 선택을 못 하고 있었다. 민트색이냐 네이비냐. 전엔 '민트가 예쁘니까' 했을 거다. 이번엔 물었다. 나한테. "이 페이지의 목적이 뭐지?" 포트폴리오 소개. 전문성 전달. "민트는 어떤 느낌을 주지?" 젊고, 친근하고, 부드럽다. "네이비는?" 차분하고, 믿음직하고, 전문적이다. 네이비를 선택했다. 이유가 있어서. 질문하는 게 무능이 아니라 성장이다 오늘 아침. 출근해서 선배한테 말했다. "선배님, 앞으로 제가 자주 물어봐도 될까요?" "응, 당연하지." "근거 없이 일하는 게 싫어서요. 매번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선배가 진지하게 봤다. "주니야, 그게 프로야. 클라이언트가 '왜'를 물어봤을 때 '왠지요'라고 답하는 디자이너는 프로가 아니야." 맞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은 모든 픽셀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쁘다고 끝이 아니다. 왜 예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년 차가 배워야 하는 건 툴이 아니라 언어다 피그마 잘 쓰는 거 중요하다. 포토샵 능숙한 거 중요하다. 트렌드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다. 근데 더 중요한 게 있다. 내 선택을 설명하는 언어. "이게 예쁘니까요" → "위계구조가 명확해서 정보 전달이 효과적입니다" "왠지 이게 나아요" → "타겟 유저의 사용 패턴에 부합합니다" "그냥 이렇게 했어요" →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 같은 디자인이다. 설명만 다르다. 근데 설명이 디자인을 완성한다. 이번 주 목표. 질문 10개 하기. 모든 선택에 이유 달기. '왠지' 안 쓰기."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다. 매일 '왜'를 물어보면서."

디자인 참고 사이트 즐겨찾기 100개의 정체

디자인 참고 사이트 즐겨찾기 100개의 정체

즐겨찾기 폴더를 열었다오늘도 Pinterest를 켰다. 30분이 지났다. 아무것도 안 했다. 즐겨찾기 폴더가 7개다. '레이아웃', '컬러', '타이포', '인터랙션', '일러스트', '참고', '나중에볼것'. 마지막 폴더에만 128개가 들어있다. 회사에서 배너 만들라고 했다. 즐겨찾기를 열었다. 한 시간 동안 봤다. 그리고 포토샵을 켰다. 결국 전에 만들던 거랑 비슷하게 만들었다. 저장해둔 디자인들은 너무 예쁘다. 내가 만드는 건 그렇지 않다. 저장의 패턴 어제 Behance에서 본 거. 브랜딩 프로젝트였다. 색 조합이 미쳤다. 저장했다. 오늘 아침 Dribbble에서 본 거. UI 디자인이었다. 여백 쓰는 게 달랐다. 저장했다. 점심시간에 인스타에서 본 거. 일러스트 스타일이 독특했다. 저장했다. 패턴이 있다. 보면 감탄한다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생각한다 저장한다 다시는 안 본다즐겨찾기에 400개가 넘는다. 기억나는 건 10개도 안 된다. 선배한테 들킨 날 "주니야, 참고 자료 좀 찾아봐." 배너 시안 3개를 만들어야 했다. 즐겨찾기를 열었다. 탭이 20개 열렸다. Pinterest, Behance, Awwwards, CSS Design Awards... 한 시간이 지났다. 선배가 왔다. "뭐 하고 있어?" "참고 자료 찾고 있어요." "한 시간 동안?" 선배가 내 화면을 봤다. 탭들이 다 열려 있었다. "이거 다 저장해뒀어?" "네..." "그래서 뭐 쓸 건데?" "아직..."선배가 웃었다. 비웃은 건 아니었다. 그냥 아는 표정이었다. "너 지금 구경하고 있잖아." "..." "예쁜 거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근데 막상 만들려면 모르겠지?" 맞았다. 구경과 공부의 차이 그날 밤에 생각했다. 나는 디자인을 구경하고 있었다. 예쁜 디자인을 보면 좋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언젠가는'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다였다. 선배가 알려줬다. "참고 자료를 볼 땐 질문을 해야 돼." "질문이요?" "왜 이 색을 썼을까. 왜 이 폰트를 골랐을까. 왜 이 레이아웃을 선택했을까." 나는 그냥 '예쁘다'만 생각했다. 다시 즐겨찾기를 열었다. 저장해둔 브랜딩 프로젝트를 봤다. 이번엔 다르게 봤다.메인 컬러가 왜 이 색일까: 브랜드가 화장품이다. 파스텔 핑크.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느낌. 타이포가 왜 세리프일까: 고급스러운 이미지. 프리미엄 라인인가보다. 왜 이렇게 여백이 많을까: 심플하게 보이려고. 제품 사진이 돋보이게.10분 봤다. 전보다 많이 보였다. 활용의 실패 다음날 배너를 만들었다. 어제 분석한 거 써먹으려고 했다. 파스텔 컬러를 썼다. 세리프 폰트를 썼다. 여백을 많이 뒀다. 이상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상했다. 선배한테 보여줬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참고 자료 봤어요." "참고했어? 아니면 따라했어?" 찔렸다.나는 그 디자인을 이해한 게 아니었다. 겉모습만 따라한 거였다. 화장품 브랜드니까 파스텔 핑크가 맞았던 거다. 우리 클라이언트는 헬스장이었다. 프리미엄 화장품이니까 세리프가 맞았던 거다. 우리는 PT 할인 이벤트였다. 맥락이 달랐다. 나는 껍데기만 가져왔다. 저장하는 이유 왜 이렇게 많이 저장했을까. 어젯밤에 생각했다. 불안해서였다. '좋은 디자인'을 많이 모으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즐겨찾기 400개면 뭔가 실력이 늘은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저장하는 건 쉽다. 북마크 버튼만 누르면 된다. 1초다. 이해하는 건 어렵다. 왜 좋은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언제 쓸 수 있는지. 그건 시간이 걸린다. 나는 쉬운 걸 계속했다. 저장만 했다. 공부하는 척이었다. 즐겨찾기 다이어트 주말에 즐겨찾기를 정리했다. 400개 중에 350개를 지웠다. 기준을 만들었다.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는 거 구체적으로 분석한 거 다시 볼 이유가 있는 거50개가 남았다. 그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50개에 메모를 달았다. "블루 계열 그라데이션 - 테크 느낌 + 신뢰감, 금융앱에 자주 쓰임" "산세리프 + 넓은 자간 - 모던하고 깔끔, 미니멀 브랜드 느낌" "대각선 레이아웃 - 역동적, 스포츠/패션 브랜드에 어울림" 적다 보니까 패턴이 보였다. 용도가 보였다. 월요일 아침 배너 작업이 들어왔다. 스포츠웨어 브랜드. 예전 같으면 Pinterest부터 켰을 것 같다. 이번엔 달랐다. 메모해둔 즐겨찾기를 봤다. "대각선 레이아웃 - 역동적"을 찾았다. 3분 걸렸다. 왜 대각선인지 생각했다. 움직이는 느낌. 에너지. 스포츠랑 맞다. 그걸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했다. 제품 이미지를 대각선으로. 텍스트는 반대 방향으로. 균형. 스케치했다. 만들었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선배한테 보여줬다. "오,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어디 참고했어?" "즐겨찾기에 있던 거요. 근데 그냥 따라한 게 아니라..." 설명했다. 왜 대각선을 썼는지. 왜 이 구도를 선택했는지.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아는구나." 기분이 좋았다. 즐겨찾기 400개 있을 때보다 50개 있을 때가 더 잘하게 됐다. 지금 하는 방식 이제는 저장을 덜 한다. 보면 바로 분석한다. 좋은 디자인을 보면:왜 좋은지 적는다 (3줄) 어디에 쓸 수 있을지 적는다 (1줄) 저장할 가치가 있으면 저장한다 아니면 그냥 넘긴다대부분 넘긴다. 괜찮다. 즐겨찾기는 50개를 유지한다. 새로 저장하면 오래된 거 하나 지운다. 정말 필요한 것만 남는다. 중요한 건 개수가 아니었다. 이해였다. 부트캠프 동기 단톡 동기가 물어봤다. "참고 사이트 어디 써?" 링크를 몇 개 보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중요한 건 많이 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보는 거야." 1년 전 같으면 못 했을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예쁜 거 구경만 하지 말고 왜 예쁜지 생각하면서 봐." "..." "나도 요즘 알았어." 동기도 나랑 똑같을 것 같다. 즐겨찾기 300개 넘고 정작 쓸 줄은 모르는. 괜찮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은 다르니까.즐겨찾기 400개는 안심용이었다. 50개는 진짜 도구다.

선배 디자인 옆에 내 디자인을 놓았을 때

선배 디자인 옆에 내 디자인을 놓았을 때

같은 파일명, 다른 세계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이 슬랙을 쳤다. "주니, 현진 씨랑 같은 컨셉으로 각자 시안 한 번씩 뽑아봐. 금요일 오전까지." 같은 브리핑. 같은 레퍼런스. 같은 마감. 현진 선배 경력은 5년. 나는 2년 3개월.목요일 밤 11시에 파일을 저장했다. "최종_배너_주니_1124_v3.fig" 금요일 아침, 선배 파일이 올라와 있었다. "배너_현진_최종.fig" 버전 넘버도 없다. 한 번에 끝냈다는 뜻이다. 20분의 침묵 회의실에 모니터 두 대를 켰다. 왼쪽에 선배 시안. 오른쪽에 내 시안. 같은 브리핑이 맞나 싶었다. 선배 건 보는 순간 알았다. "아, 이거다." 내 건 보는 순간도 알았다. "아, 이게 아닌데." 팀장님이 20분 동안 두 개를 번갈아 봤다. 나는 책상 모서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주니 거, 요소는 다 들어갔는데..." 들어갔는데. 이 말 뒤에는 항상 문제가 온다. "현진 거는 한눈에 들어오네. 이걸로 가자." 회의가 끝났다. 선배는 자리로 돌아가서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물을 마셨다. 10분 동안.파일을 열었다 점심시간에 혼자 남아서 두 파일을 나란히 띄웠다. 선배 파일부터. 레이어 이름이 정갈하다. "bg_gradient", "cta_button", "text_headline". 내 파일. "사각형 1 복사본 3", "그룹 해제 23", "레이어 189". 이건 정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배 시안은 여백이 숨을 쉰다. 내 시안은 여백이 불안하다. 뭔가 더 채워야 할 것 같다. 선배 건 폰트가 두 개다. 본문, 강조. 끝. 내 건 폰트가 네 개다. 각각 다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 보니 산만하다. 선배 건 색이 세 개다. 메인, 서브, 포인트. 내 건 색이... 스포이트로 찍어봤다. 일곱 개다. "통일성"이라는 게 이런 건가. 대체 어떻게 이렇게 선택을 적게 하는데 더 풍부해 보이는 거지. 구조를 뜯어봤다 선배 시안을 레이어별로 껐다 켰다 해봤다. 타이틀 끄니까 CTA 버튼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끈다. 버튼 끄니까 이미지가 말을 한다. 이미지 끄니까 배경 그라데이션이 공간을 잡는다. 뭘 빼도 무너지지 않는다. 내 시안은. 타이틀 끄니까 허전하다. 버튼 끄니까 어디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지 끄니까 텅 빈다. 각 요소가 서로를 안 믿는다. 혼자 목소리를 높인다. 30분 동안 레이어를 켰다 껐다 반복했다. 답은 여기 있는데. 내가 못 읽는 거다.센스냐, 경험이냐 퇴근길 지하철에서 현진 선배한테 슬랙을 보냈다. "선배, 제 시안이랑 선배 시안 차이가... 어디서 나는 것 같으세요?" 10분 뒤 답이 왔다. "응 나도 2년차 때 너랑 똑같았어. 요소 다 넣으려고 안간힘 썼지." "그럼 언제부터 달라진 거예요?" "음... 빼도 된다는 걸 알았을 때?" "그게 언제였어요?" "300개쯤 만들고 나니까." 300개. 나 지금 몇 개 만들었지. 회사 들어와서 배너, 상세페이지, 팝업 합쳐서... 한 80개? 220개 남았다. 220개 더 만들면 나도 저렇게 될까. 아니면 220개 만들어도 센스가 없으면 소용없는 걸까. 집에 와서 노트에 적었다. "경력 5년 = 시안 몇 개?" 계산해봤다. 주 5일, 하루 1개씩만 쳐도 연 250개. 5년이면 1,250개. 나랑 1,170개 차이. 이게 "경험"의 물리적 거리구나. 못 보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에 현진 선배 시안을 프린트했다. 책상에 붙이고 따라 만들어봤다. 똑같이. 레이어 이름까지 똑같이. 폰트 사이즈, 자간, 행간, 컬러 코드 전부. 3시간 걸렸다. 완성하고 나니까 뭔가 보였다. 타이틀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 겁 없이 크다. 여백이 생각보다 넓다. 불안할 만큼 넓다. 컬러가 생각보다 절제돼 있다. 심심할 만큼. 근데 이게 더 시원하다. 더 읽힌다. 더... 프로페셔널하다. 그다음 내 시안을 선배 방식으로 고쳐봤다. 폰트 4개를 2개로. 색 7개를 3개로. 요소 12개를 8개로. 여백을 1.5배로. 저장하고 봤다. "어? 이게 더 낫잖아?" 근데 이걸 처음부터 못 한 거다. 빼는 게 무서웠다. 비어 보일까 봐. 못 만든 것처럼 보일까 봐. 디자인은 더하기가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 팀장님한테 메시지 보냈다. "지난 시안, 다시 한번 수정해봐도 될까요?" "응? 이미 현진 거로 진행 들어갔는데. 왜?" "제가 뭘 놓쳤는지 알 것 같아서요. 연습 삼아서라도." "그래, 한번 해봐." 화요일 오전에 수정본 올렸다. 팀장님이 30초 보더니 말했다. "오, 이게 금요일 거야?" "네. 선배 시안 구조 분석해서 다시 짰어요." "많이 나아졌네. 이번 건 아쉽지만 다음엔 이 방향으로 가보자." 책상으로 돌아왔다. 현진 선배가 슬랙을 쳤다. "봤어. 잘했어. 근데 너 주말에 작업했지?" "네... 연습하려고요." "ㅋㅋㅋ 나도 그랬어. 2년차 때 선배 파일 몰래 뜯어봤거든. 들키면 X같아 보일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진짜요?" "응. 300개 만들라는 말 했잖아. 그중에 100개는 남 거 따라 만든 거야. 그게 제일 빨라." "감사합니다." "그래도 있잖아." "네?" "220개 더 만들어야 한다는 건 변함없어 ㅎㅎ 화이팅."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차이의 정체 그날 저녁 일기장에 적었다. "선배랑 나랑 차이. 폰트 선택? 아니다. 색 조합? 아니다. 툴 숙련도? 아니다. '빼도 된다'는 확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 '여기에 집중하자'는 우선순위. 이게 경력이다. 센스 아니다. 무서워하지 않는 것. 비어 보여도 괜찮다고 믿는 것. 220개 남았다. 무섭지만 만들어야 한다. 하나씩." 수요일 점심시간. 현진 선배 시안 하나를 또 따라 만들었다. 이번엔 2시간 반 걸렸다. 30분 줄었다. 목요일에는 2시간. 금요일에는 1시간 반. 팀장님이 새 브리핑을 던졌다. "주니, 이번 주 배너 하나 부탁해. 월요일까지." 파일을 만들었다. 레이어 이름부터 정리했다. 폰트 두 개만 열었다. 색 세 개만 찍었다. 타이틀 크기를 두 배로 키웠다. 무섭지만. 여백을 두 배로 늘렸다. 불안하지만. 요소를 네 개 뺐다. 떨리지만. 저장했다. "배너_주니_최종.fig" 버전 넘버 없이. 월요일 오전, 팀장님이 10초 보더니 말했다. "오케이. 이대로 가자." 현진 선배가 지나가다 내 모니터를 봤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 그 한마디에 일주일이 버틴다.219개 남았다. 무섭지만, 오늘도 하나 더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