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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즈 작업을 반복하면서 배운 것

리사이즈 작업을 반복하면서 배운 것

리사이즈 작업을 반복하면서 배운 것 오늘도 리사이즈 오후 2시. 선배가 파일을 넘긴다. "이거 720x1280, 640x640, 1080x1080 세 가지로 리사이즈해줘." "네." 세 번째 대답이다. 오늘만.리사이즈 작업. 같은 배너를 다른 크기로 만드는 일. 글자 위치 조정하고, 이미지 크롭하고, 여백 맞추고. 처음엔 단순 노가다인 줄 알았다. 입사 2개월 차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게 뭐라고 3시간이나 걸려." "이거 하나 만들 시간에 새 디자인을 하는 게 낫지 않나." 틀렸다. 지금은 안다. 첫 리사이즈, 첫 좌절 작년 9월. 첫 리사이즈 작업을 받았다. 이벤트 배너 하나를 5가지 사이즈로.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다. 4시간 걸렸다. 640x640으로 줄이니까 글자가 안 읽혔다. 글자 크기를 키우니까 이미지가 답답해 보였다. 이미지를 줄이니까 여백이 어색했다. 선배가 확인했다. "음... 이건 좀." "네?" "720x1280은 세로니까 구도를 다시 잡아야 해. 그냥 늘린 거 아니지?" "아... 네. 다시 하겠습니다." 그날 7시간 걸렸다. 하나 만드는 데 1시간. 다섯 개 만드는 데 7시간. 수학이 안 맞았다.반복의 지옥 10월, 11월, 12월. 매일 리사이즈. 월요일: 쇼핑몰 배너 4종 화요일: 이벤트 페이지 상단 3종 수요일: SNS 콘텐츠 5종 목요일: 앱 푸시 이미지 2종 금요일: 정산 못 한 것들 몰아서. 손목이 아팠다. 같은 파일을 열고, 복사하고, 사이즈 바꾸고, 저장하고. 피그마 단축키가 꿈에 나왔다. Ctrl+D, Ctrl+G, Shift+A. 자다가 손가락이 움직였다. "이게 디자이너가 할 일인가." 속으로 몇 번 되뇌었다. 부트캠프 동기들 단톡방. 다들 비슷했다. "오늘도 리사이즈 10개ㅠ" "나도... 배너 양산 중..." "이거 언제까지 하는 거야 진짜" 위로가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근데 위로만으론 안 됐다. 이대로 2년, 3년 가는 건가. 뭔가 달라지기 시작 1월. 변화가 왔다. 리사이즈 속도가 빨라졌다. 전엔 4시간 걸리던 게 1시간 반. 뭐가 달라진 걸까. 생각해봤다. 640x640은 정사각형이니까 중심 구도. 720x1280은 세로니까 위아래 여백 활용. 1080x1080은 인스타니까 텍스트는 중앙 아래 80% 지점. 이게 몸에 박혔다. 생각 안 하고 손이 움직였다.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주니야, 이번 건 피드백 없다. 그냥 가자." "네? 정말요?" "응. 잘했어." 그날 저녁.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2500원짜리.반복 속에서 본 것들 2월 지금. 리사이즈가 싫지 않다. 아니, 좋진 않다. 근데 의미 없진 않다는 걸 알았다. 첫째, 비율 감각. 640x640을 100번 만들면 정사각형이 보인다. 1920x1080을 100번 만들면 가로 구도가 보인다. 글자 위치, 이미지 크롭, 여백 배치. 자로 재지 않아도 눈으로 안다. 둘째, 우선순위. 5가지 사이즈를 만들 때 뭐부터 할까. 제일 작은 거부터. 640x640에서 작동하면 큰 사이즈는 쉽다. 작은 화면에서 안 읽히는 글자는 어디서든 약하다. 셋째, 일관성. 같은 디자인을 5개 사이즈로 만들면서 배웠다. '통일감'이 뭔지. 컬러, 폰트, 간격, 무드. 하나라도 어긋나면 다섯 개가 다 따로 논다. 넷째, 속도. 빠르게 만드는 법. 컴포넌트 쓰고, 스타일 저장하고, 단축키 외우고. 전엔 몰랐다. '빨리 하는 것'도 실력이다. 선배의 파일 3주 전. 선배 파일을 열었다. 리사이즈 작업 참고용. 컴포넌트가 정리돼 있었다. 버튼_대, 버튼_중, 버튼_소. 텍스트_타이틀, 텍스트_본문. 여백_상단_60px, 여백_좌우_40px. "와." 5개 사이즈를 30분 만에 뽑았다. 컴포넌트만 교체하면 끝. 물어봤다. "선배, 이거 언제 만드신 거예요?" "음... 1년 차 때? 리사이즈 하다가 빡쳐서." "대박." "너도 만들어. 지금." 그날부터 시작했다. 내 리사이즈 시스템. 파일명: 주니_리사이즈_템플릿_v1 사이즈별 가이드 레이어. 자주 쓰는 컴포넌트. 폰트 스타일 5개. 아직 완벽하진 않다. 근데 시작은 했다. 무의미한 반복은 없다 지금도 리사이즈는 한다. 매일. 근데 생각이 달라졌다. 전엔 '시키는 일'이었다. 지금은 '배우는 시간'이다. 같은 작업을 100번 하면 보인다. '왜 이 사이즈에선 이 구도가 맞는지.' '왜 이 여백에선 답답해 보이는지.' 손으로 배운다. 머리로는 모르는 걸 손은 안다. 어제 회의. 팀장님이 시안을 보시며 물었다. "이거 다른 사이즈로도 전개 가능해?" 선배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말했다. "네, 가능합니다. 세로 버전은 상단 여백 늘리고, 정사각형은 중심 구도로 바꾸면 될 것 같아요." 팀장님이 끄덕였다. "오케이." 선배가 옆에서 웃었다. 회의 끝나고 말했다. "주니 많이 늘었다." "감사합니다." "리사이즈 덕분인 거 알지?" "...네." 인정한다. 리사이즈 덕분이다. 지금의 나 오늘도 리사이즈 3건. 1시간 반 걸렸다. 예전 같으면 4시간. 2시간 반을 벌었다. 그 시간에 뭘 했나. 개인 작업. 포트폴리오에 넣을 시안 스케치. 리사이즈를 빨리 끝내니까 시간이 생겼다. 시간이 생기니까 다른 걸 할 수 있다. 이게 성장인가. 확신은 없다. 근데 작년의 나보단 낫다. 반복이 쌓이면 감각이 된다. 감각이 쌓이면 속도가 된다. 속도가 생기면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면. 그때 진짜 내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아직도 배우는 중 리사이즈 고수가 된 건 아니다. 여전히 막힐 때가 있다. 이상한 비율 나오면 당황한다. 828x1792 같은 거. "이게 뭐야." 선배 파일 보면 아직도 배울 게 많다. 레이어 이름 짓는 법. 컴포넌트 정리하는 법. 변수 쓰는 법. 모르는 게 더 많다. 근데 괜찮다. 작년엔 모르는 것도 몰랐다. 지금은 뭘 모르는지 안다. 그것만으로도 성장이다.리사이즈는 여전히 반복 작업이다. 근데 무의미하진 않다. 100번 하면 손이 기억한다. 1000번 하면 눈이 보인다. 그게 쌓여서 실력이 된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디자인 참고 사이트 즐겨찾기 100개의 정체

디자인 참고 사이트 즐겨찾기 100개의 정체

즐겨찾기 폴더를 열었다오늘도 Pinterest를 켰다. 30분이 지났다. 아무것도 안 했다. 즐겨찾기 폴더가 7개다. '레이아웃', '컬러', '타이포', '인터랙션', '일러스트', '참고', '나중에볼것'. 마지막 폴더에만 128개가 들어있다. 회사에서 배너 만들라고 했다. 즐겨찾기를 열었다. 한 시간 동안 봤다. 그리고 포토샵을 켰다. 결국 전에 만들던 거랑 비슷하게 만들었다. 저장해둔 디자인들은 너무 예쁘다. 내가 만드는 건 그렇지 않다. 저장의 패턴 어제 Behance에서 본 거. 브랜딩 프로젝트였다. 색 조합이 미쳤다. 저장했다. 오늘 아침 Dribbble에서 본 거. UI 디자인이었다. 여백 쓰는 게 달랐다. 저장했다. 점심시간에 인스타에서 본 거. 일러스트 스타일이 독특했다. 저장했다. 패턴이 있다. 보면 감탄한다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생각한다 저장한다 다시는 안 본다즐겨찾기에 400개가 넘는다. 기억나는 건 10개도 안 된다. 선배한테 들킨 날 "주니야, 참고 자료 좀 찾아봐." 배너 시안 3개를 만들어야 했다. 즐겨찾기를 열었다. 탭이 20개 열렸다. Pinterest, Behance, Awwwards, CSS Design Awards... 한 시간이 지났다. 선배가 왔다. "뭐 하고 있어?" "참고 자료 찾고 있어요." "한 시간 동안?" 선배가 내 화면을 봤다. 탭들이 다 열려 있었다. "이거 다 저장해뒀어?" "네..." "그래서 뭐 쓸 건데?" "아직..."선배가 웃었다. 비웃은 건 아니었다. 그냥 아는 표정이었다. "너 지금 구경하고 있잖아." "..." "예쁜 거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근데 막상 만들려면 모르겠지?" 맞았다. 구경과 공부의 차이 그날 밤에 생각했다. 나는 디자인을 구경하고 있었다. 예쁜 디자인을 보면 좋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언젠가는'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다였다. 선배가 알려줬다. "참고 자료를 볼 땐 질문을 해야 돼." "질문이요?" "왜 이 색을 썼을까. 왜 이 폰트를 골랐을까. 왜 이 레이아웃을 선택했을까." 나는 그냥 '예쁘다'만 생각했다. 다시 즐겨찾기를 열었다. 저장해둔 브랜딩 프로젝트를 봤다. 이번엔 다르게 봤다.메인 컬러가 왜 이 색일까: 브랜드가 화장품이다. 파스텔 핑크.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느낌. 타이포가 왜 세리프일까: 고급스러운 이미지. 프리미엄 라인인가보다. 왜 이렇게 여백이 많을까: 심플하게 보이려고. 제품 사진이 돋보이게.10분 봤다. 전보다 많이 보였다. 활용의 실패 다음날 배너를 만들었다. 어제 분석한 거 써먹으려고 했다. 파스텔 컬러를 썼다. 세리프 폰트를 썼다. 여백을 많이 뒀다. 이상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상했다. 선배한테 보여줬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참고 자료 봤어요." "참고했어? 아니면 따라했어?" 찔렸다.나는 그 디자인을 이해한 게 아니었다. 겉모습만 따라한 거였다. 화장품 브랜드니까 파스텔 핑크가 맞았던 거다. 우리 클라이언트는 헬스장이었다. 프리미엄 화장품이니까 세리프가 맞았던 거다. 우리는 PT 할인 이벤트였다. 맥락이 달랐다. 나는 껍데기만 가져왔다. 저장하는 이유 왜 이렇게 많이 저장했을까. 어젯밤에 생각했다. 불안해서였다. '좋은 디자인'을 많이 모으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즐겨찾기 400개면 뭔가 실력이 늘은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저장하는 건 쉽다. 북마크 버튼만 누르면 된다. 1초다. 이해하는 건 어렵다. 왜 좋은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언제 쓸 수 있는지. 그건 시간이 걸린다. 나는 쉬운 걸 계속했다. 저장만 했다. 공부하는 척이었다. 즐겨찾기 다이어트 주말에 즐겨찾기를 정리했다. 400개 중에 350개를 지웠다. 기준을 만들었다.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는 거 구체적으로 분석한 거 다시 볼 이유가 있는 거50개가 남았다. 그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50개에 메모를 달았다. "블루 계열 그라데이션 - 테크 느낌 + 신뢰감, 금융앱에 자주 쓰임" "산세리프 + 넓은 자간 - 모던하고 깔끔, 미니멀 브랜드 느낌" "대각선 레이아웃 - 역동적, 스포츠/패션 브랜드에 어울림" 적다 보니까 패턴이 보였다. 용도가 보였다. 월요일 아침 배너 작업이 들어왔다. 스포츠웨어 브랜드. 예전 같으면 Pinterest부터 켰을 것 같다. 이번엔 달랐다. 메모해둔 즐겨찾기를 봤다. "대각선 레이아웃 - 역동적"을 찾았다. 3분 걸렸다. 왜 대각선인지 생각했다. 움직이는 느낌. 에너지. 스포츠랑 맞다. 그걸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했다. 제품 이미지를 대각선으로. 텍스트는 반대 방향으로. 균형. 스케치했다. 만들었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선배한테 보여줬다. "오,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어디 참고했어?" "즐겨찾기에 있던 거요. 근데 그냥 따라한 게 아니라..." 설명했다. 왜 대각선을 썼는지. 왜 이 구도를 선택했는지.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아는구나." 기분이 좋았다. 즐겨찾기 400개 있을 때보다 50개 있을 때가 더 잘하게 됐다. 지금 하는 방식 이제는 저장을 덜 한다. 보면 바로 분석한다. 좋은 디자인을 보면:왜 좋은지 적는다 (3줄) 어디에 쓸 수 있을지 적는다 (1줄) 저장할 가치가 있으면 저장한다 아니면 그냥 넘긴다대부분 넘긴다. 괜찮다. 즐겨찾기는 50개를 유지한다. 새로 저장하면 오래된 거 하나 지운다. 정말 필요한 것만 남는다. 중요한 건 개수가 아니었다. 이해였다. 부트캠프 동기 단톡 동기가 물어봤다. "참고 사이트 어디 써?" 링크를 몇 개 보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중요한 건 많이 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보는 거야." 1년 전 같으면 못 했을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예쁜 거 구경만 하지 말고 왜 예쁜지 생각하면서 봐." "..." "나도 요즘 알았어." 동기도 나랑 똑같을 것 같다. 즐겨찾기 300개 넘고 정작 쓸 줄은 모르는. 괜찮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은 다르니까.즐겨찾기 400개는 안심용이었다. 50개는 진짜 도구다.

'왜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내가 본 것

'왜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내가 본 것

"왜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내가 본 것 그날의 시작 월요일 오후 3시. 선배가 내 자리로 왔다. "주니야, 배너 시안 좀 보자." 심장이 뛰었다. 주말 내내 만든 시안이다. 레퍼런스 10개 보고, 레이아웃 3번 바꿨다. 색도 5번 바꿨다. 선배가 내 모니터를 봤다. "음." 이 '음'이 제일 무섭다.30초쯤 지났을까. 선배가 물었다. "여기 여백, 왜 이렇게 했어?" 나는 대답했다. "아... 그게..." 선배가 다시 물었다. "이 컬러는 왜 선택했어?" "어... 레퍼런스가..." "이 폰트 조합은요?" "..." 입이 안 열렸다. 이유를 몰랐다. 그냥 예뻐 보여서 사실은 이랬다. 여백은 '그냥 이 정도면 괜찮아 보여서'. 컬러는 '레퍼런스 중에 하나가 이 색이어서'. 폰트는 '요즘 많이 쓰는 거라서'. 전부 '그냥'이었다. '왜냐하면'이 없었다. 선배가 말했다. "주니야, 디자인은 이유가 있어야 해." "클라이언트가 물어보면 뭐라고 할 거야?" 화장실 가서 울었다. 10분 있다가 나왔다. 눈 부은 거 들킬까 봐 세수했다.그날 밤 집에 와서 시안을 다시 봤다. 정말 이유가 없었다. 왜 이 여백인지. 왜 이 색인지. 왜 이 서체인지. 하나도 설명 못 한다. 레퍼런스 폴더를 열었다. 10개가 저장돼 있다. 근데 왜 저장했는지 모르겠다. '예쁘다'는 이유뿐. 뭘 배운 건지. 뭘 적용한 건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따라 한 거다. 보기 좋게. '감'으로. 선배의 파일 다음 날. 선배 파일을 몰래 열었다. 레이어 이름부터 달랐다. '여백_상단_시각적균형_40px' '메인컬러_브랜드아이덴티티_#FF5733' '헤드라인_가독성우선_Pretendard_Bold' 이름에 이유가 있었다. 가이드 문서도 있었다. A4 2장.타겟 연령층: 25-35세 여성 목적: 프로모션 인지도 컬러 근거: 브랜드 가이드 메인 컬러 활용 여백 기준: 모바일 가독성 고려 최소 32px 폰트 선택: 긴 문장 가독성 최우선모든 게 이유였다. '예쁘다'가 아니었다.바꾼 것 그다음 프로젝트. 배너 작업이 들어왔다. 시안 만들기 전에 A4 한 장 썼다. 디자인 결정 근거타겟: 30대 직장인 남성 목적: 신규 서비스 인지 톤앤매너: 신뢰감, 전문성 컬러 방향: 차분한 블루 계열 (안정감) 레이아웃: 좌측 텍스트, 우측 비주얼 (시선 흐름) 여백: 답답하지 않게 최소 48px 폰트: 고딕 계열 (가독성)한 시간 걸렸다. 근데 시안은 30분 만에 나왔다. 방향이 정해지니까 빨랐다. '이게 예쁜가?' 고민이 없었다. '이게 맞나?' 확신이 있었다. 선배에게 보여주는 시간 떨렸다. 근데 지난주랑 다른 떨림이었다. "주니야, 시안 볼까?" "네." 선배가 봤다. "음." 이번엔 30초가 안 무서웠다. "여기 여백은 왜 이렇게 했어?" "타겟이 모바일로 많이 볼 것 같아서요." "손가락으로 누르기 편하게 48px로 잡았어요." "오, 그렇구나. 컬러는?" "신뢰감 주려고 브랜드 메인 블루 썼고요." "채도는 낮춰서 부담 안 되게 했어요." "폰트는요?" "정보 전달이 중요해서 고딕으로요." "헤드라인이랑 본문 위계 확실하게 나눴어요."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이유가 명확하네." 가슴이 뛰었다. 울었던 화장실 생각났다. 일주일 전이랑 다른 나. 클라이언트 미팅 2주 뒤. 클라이언트 미팅에 따라갔다. 선배가 시안을 보여줬다. 내 시안이었다. 클라이언트가 물었다. "이 컬러 좀 밝게 하면 안 될까요?" 선배가 나를 봤다. "주니야, 설명해 줄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근데 말이 나왔다. "타겟층이 30대 직장인이라서요." "너무 밝으면 가벼워 보일 수 있어요." "신뢰감이 중요한 서비스라서 이 톤으로 제안드렸습니다." 클라이언트가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이해했어요." 미팅 끝나고 선배가 말했다. "잘했어. 많이 늘었네." 화장실 가서 또 울었다. 이번엔 다른 이유로. 지금의 나 요즘은 시안 만들기 전에 쓴다. 왜 이걸 하는지. 누구를 위한 건지. 뭘 전달하려는 건지. 3줄이면 된다. 그 3줄이 있으면 모든 게 달라진다. 여백도 '왜 이 크기'가 있다. 컬러도 '왜 이 색'이 있다. 폰트도 '왜 이 서체'가 있다. 감이 아니다. 이유다. 레퍼런스 보는 방법도 바뀌었다. 예전엔 '예쁘다' 저장. 지금은 '왜 예쁜지' 분석.이 레이아웃은 시선을 어떻게 유도하나 이 컬러 조합은 왜 조화로운가 이 여백은 어떤 느낌을 주나저장할 때 메모를 단다. "대각선 구도로 시선 유도" "보색 대비로 강조점 생성" "넓은 여백으로 프리미엄 느낌" 3개월 전 나는 몰랐다. 디자인은 예쁜 게 아니라 이유라는 걸. 후배가 생겼다 며칠 전. 신입이 들어왔다. 내가 2년 전 나다. 눈 초롱초롱하고 떨린다. 시안 보여주러 왔다. "선배님, 확인 부탁드려요." 봤다. "음." "여기 여백은 왜 이렇게 했어?" 후배가 말했다. "그게... 그냥 예뻐 보여서요." 웃었다. 나였다. "괜찮아. 나도 그랬어." "근데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 "이 디자인으로 뭘 전달하고 싶어?" 후배가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예쁜 건 그다음이야." A4 용지 한 장 줬다. 디자인 결정 근거 빈 양식. "이거 채워보고 다시 와." "30분 걸릴 거야." "근데 시안은 10분 만에 나올 거야." 후배가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저랬지. '왜 이렇게 했어?'에 대답 못 했지. 그때 선배가 준 건 답이 아니었다. 질문이었다.'왜?'라는 질문. 이게 날 디자이너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