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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선택을 '이게 왠지 더 나을 것 같은데' 로 하면 안 되는 이유

디자인 선택을 '이게 왠지 더 나을 것 같은데' 로 하면 안 되는 이유

디자인 선택을 '이게 왠지 더 나을 것 같은데'로 하면 안 되는 이유 오늘도 '왠지' 로 일했다 오전 10시. 팀장님이 배너 시안 3개 요청했다. A안, B안, C안 만들었다. 근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색 배치만 다른 건데 내가 봐도 비슷하다. 팀장님이 물으신다. "주니 생각엔 어떤 게 나을 것 같아?" "음... B안이요. 왠지 더 나아 보여서요." "왠지? 왜 나아 보이는데?" 대답 못 했다. 그냥 느낌이라고 말할 순 없잖아. "글자가 더 잘 보여서요..." 얼버무렸다. 팀장님은 고개만 끄덕이고 가셨다. 표정이 이상했다.점심시간에 혼자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B안이 좋다고 했을까. 진짜 이유가 뭐였지. 그냥 가운데 있어서? 무난해 보여서? 감각은 재능이 아니라 경험이다 선배가 커피 타러 가길래 따라갔다. "선배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디자인 선택할 때 어떻게 결정하세요?" 선배가 웃었다. "주니는 감으로 하지?" 들켰다. "네..." "나도 신입 때 그랬어. 근데 그게 문제야." 선배 말이다.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고. 수천 번 봐서 쌓인 거라고. "A안이 나은 이유가 '그냥'이면 안 돼. 위계구조가 명확해서, 여백이 적절해서, 타이포가 본문과 균형 맞아서. 이런 이유가 있어야 해." 나는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만들었다. 예쁘면 됐지 뭐. 그게 디자인 아닌가 싶었다.물어보면 무능해 보일까 봐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왜 이 여백이 20px여야 하는지. 왜 이 색이 #FF5733이어야 하는지. 왜 제목을 왼쪽 정렬하면 안 되는지. 근데 못 물어본다. 2년차인데 이것도 모르냐고 할까 봐. '감이 없네' 또 들을까 봐. 지난주 회의 때다. 마케팅팀에서 물었다. "이 버튼 색은 왜 파란색이에요?" 나: "음... 브랜드 컬러라서요." "그럼 여기는 왜 회색이에요?" "음... 눈에 덜 띄게 하려고요." "기준이 뭐예요?" 대답 못 했다. 그냥 했다. 선배가 대신 설명해줬다. "주요 액션은 브랜드 컬러, 부가 액션은 중성 톤. 위계에 따라 색상 강도를 조절했습니다." 아, 그런 거였구나. 나는 그냥 '이게 이쁘니까' 했는데.질문하면 무능해 보인다는 생각. 틀렸다. 근거 없이 일하는 게 무능한 거다. 클라이언트는 '왠지'를 안 산다 저번 달 외주 작업. 카페 브랜딩이었다. 로고 시안 5개 만들었다. 사장님이 물으셨다. "이 로고는 왜 이렇게 만드셨어요?" "감성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손글씨체 썼구요, 컬러는 따뜻한 느낌 주려고 브라운 톤으로..." "그런데 왜 손글씨체가 감성적인가요?" "음... 사람 손으로 쓴 거라서요?" "우리 카페가 감성적이어야 하는 이유는요?" 말문이 막혔다. 집에 와서 혼자 생각했다. 사장님 고객층: 30대 직장인. 위치: 오피스 밀집 지역. 니즈: 빠른 포장, 일 하면서 마시기 좋은 커피. 감성 카페? 아니잖아. 나는 내 취향으로 만들었다. 근거 없이. 결국 수정 3번 했다. 마지막엔 선배가 같이 들어갔다. 사장님이 선배 설명 듣고 바로 결정하셨다. "이 폰트는 가독성이 높고 전문적으로 보입니다. 컬러는 차분하면서도 프리미엄 느낌을 줍니다. 타겟층인 직장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디자인입니다." 같은 디자인이었다. 설명만 달랐다. 질문하지 않으면 2년차가 10년 돼도 신입이다 어제 점심시간. 같은 부트캠프 출신 친구를 만났다. 얘도 2년차. 근데 일하는 게 달랐다. "나 요즘 선배한테 하루에 10개는 물어봐." "진짜? 뭘?" "다. 왜 이 간격이 8px인지, 왜 이 색 썼는지, 왜 이 레이아웃 선택했는지." "귀찮아하지 않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선배가 그러는데, 근거 있게 물어보면 오히려 좋대. '얘 생각하면서 일하네' 이렇게 보인대." 나는 반대로 했다. 혼자 고민하고, 감으로 결정하고, 피드백 받으면 수정만 하고. 친구가 말했다. "주니야, 우리 경력 2년이야. 2년 동안 감으로만 일하면 10년 돼도 신입이야. 근데 2년 동안 이유를 배우면 5년차처럼 일해." 그 말 듣고 울컥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번 주부터 바꾼 것 월요일. 출근해서 노션에 페이지 만들었다. 제목: "내가 한 디자인 선택과 이유" 매일 기록한다.오늘 어떤 선택을 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근거가 있었는지 없었다면 뭐가 필요했는지화요일. 상세페이지 작업 중 막혔다. 제품 이미지를 왼쪽에 둘까 오른쪽에 둘까. 전엔 그냥 '왼쪽이 나을 것 같은데' 하고 했다. 이번엔 선배한테 물었다. "선배님, 제품 이미지 배치 여쭤봐도 될까요? 왼쪽과 오른쪽 중 어떤 게 나을까요?" 선배가 물었다. "주니는 어떻게 생각해?" "Z패턴으로 보면 왼쪽이 먼저 보일 것 같은데, 그럼 텍스트가 나중에 읽혀서 구매 유도가 약할까 싶어서요." 선배가 웃었다. "오, 생각하고 물어보네?" "네... 맞는지 모르겠어서요." "맞아. 이커머스는 보통 제품 이미지 오른쪽에 둬. 왼쪽에 핵심 정보와 버튼 먼저 보여주는 거지. 근데 제품이 비주얼로 승부하는 거면 왼쪽도 괜찮아." 10초 대화로 2시간 고민 끝났다. 근데 중요한 건 다른 거다. 선배가 나를 다르게 봤다. '생각하는 디자이너'로. 수요일. 팀 회의. 앱 리뉴얼 디자인 발표. 내 차례가 왔다. "이번 홈 화면은 카드 레이아웃으로 구성했습니다. 리스트보다 카드가 나을 것 같아서..." 말하다가 멈췄다. '나을 것 같아서'를 또 썼다. 다시 시작했다. "리스트보다 카드를 선택한 이유는, 타겟 유저가 20대 후반이고,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같은 카드형 UI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콘텐츠가 이미지 중심이라 카드 형태가 정보 전달에 효과적입니다."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좋아요. 계속해보세요." 발표 끝나고 선배가 귓속말했다. "많이 늘었네. 요즘 뭐해?" 매일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선배가 웃었다. "그래, 그게 디자인이야." 감각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지금 깨달았다. '디자인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수천 번 '왜'를 묻고 답하면서 만들어지는 거다. 선배는 감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그게 아니다. 너무 많이 물어보고 생각해서 이제 자동으로 나오는 거다. 나는 2년 동안 '왜'를 건너뛰었다. 그래서 아직도 신입처럼 일한다. 어제 저녁. 개인 작업 중 색 선택을 못 하고 있었다. 민트색이냐 네이비냐. 전엔 '민트가 예쁘니까' 했을 거다. 이번엔 물었다. 나한테. "이 페이지의 목적이 뭐지?" 포트폴리오 소개. 전문성 전달. "민트는 어떤 느낌을 주지?" 젊고, 친근하고, 부드럽다. "네이비는?" 차분하고, 믿음직하고, 전문적이다. 네이비를 선택했다. 이유가 있어서. 질문하는 게 무능이 아니라 성장이다 오늘 아침. 출근해서 선배한테 말했다. "선배님, 앞으로 제가 자주 물어봐도 될까요?" "응, 당연하지." "근거 없이 일하는 게 싫어서요. 매번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선배가 진지하게 봤다. "주니야, 그게 프로야. 클라이언트가 '왜'를 물어봤을 때 '왠지요'라고 답하는 디자이너는 프로가 아니야." 맞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은 모든 픽셀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쁘다고 끝이 아니다. 왜 예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년 차가 배워야 하는 건 툴이 아니라 언어다 피그마 잘 쓰는 거 중요하다. 포토샵 능숙한 거 중요하다. 트렌드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다. 근데 더 중요한 게 있다. 내 선택을 설명하는 언어. "이게 예쁘니까요" → "위계구조가 명확해서 정보 전달이 효과적입니다" "왠지 이게 나아요" → "타겟 유저의 사용 패턴에 부합합니다" "그냥 이렇게 했어요" →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 같은 디자인이다. 설명만 다르다. 근데 설명이 디자인을 완성한다. 이번 주 목표. 질문 10개 하기. 모든 선택에 이유 달기. '왠지' 안 쓰기."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다. 매일 '왜'를 물어보면서."

신림동 원룸에서 일어나는 아침 루틴의 시작

신림동 원룸에서 일어나는 아침 루틴의 시작

신림동 원룸에서 일어나는 아침 루틴의 시작 7시 30분, 알람 알람이 울렸다. 세 번째 알람이다. 7시에 첫 알람. 7시 15분에 두 번째. 그리고 지금. 손을 뻗어 폰을 잡았다. 눈을 비비고 화면을 봤다. 인스타그램 알림 2개. 디자인 계정. 팔로워가 하나 늘었다. 33명. 이불을 걷어찼다. 추웠다. 원룸은 좁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책상이 보인다. 책상 위에 노트북. 어젯밤에 켜둔 채로 잤다. 피그마 화면이 그대로다. 주말에 만들던 포트폴리오. 아직 30%도 안 됐다. 창문 밖을 봤다. 신림동 아침. 회색 건물들. 빨래 너덜거리는 옥상들.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45만원 월세. 보증금 500만원은 부모님이 내주셨다. 미안했다.샤워 10분 샤워실이 좁다. 팔 벌리면 벽에 닿는다. 뜨거운 물을 틀었다. 온수가 나오기까지 2분. 그동안 춥다. 머리를 감았다. 샴푸 거품이 눈에 들어갔다. 따가웠다. 어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주니 씨, 이 배너 여백이 좀 이상해요."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내 화면을 보시면서. "네, 수정하겠습니다." 뭐가 이상한지 몰랐다.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돌아가서 30분 동안 여백을 조정했다. 10px씩 옮겨봤다. 20px도 해봤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갔다. 다시 보여드렸다. "네, 이제 괜찮네요." 뭘 고친 건지 나도 모르겠다. 샤워 끝. 수건으로 머리를 감쌌다. 거울을 봤다. 부은 얼굴. 다크서클. 26살.아침 준비 30분 옷장을 열었다. 옷이 많지 않다. 검은색 티셔츠. 회색 가디건. 청바지. 항상 비슷하다.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이 작다. 얼굴 반쪽만 보인다. 톤업 크림. 파운데이션. 아이브로우. 립밤. 회사 가는 화장. 20분이면 된다. 대학생 때는 1시간 걸렸다. 지금은 아침이 아깝다. 폰을 봤다. 8시 10분. 남자친구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점심 같이?" 회사 개발팀 김민준. 1년 됐다. 처음 만난 건 회사 MT. 취하지도 않았는데 떨렸다. 답장이 왔다. "오늘 미팅 있어. 내일은?" "ㅇㅋ" 짧게 답했다. 서운하지 않은 척. 토스트를 꺼냈다. 냉장고에 잼이 있다. 딸기잼. 엄마가 싸주신 거. 물을 끓였다. 커피를 탔다. 맥심 모카골드. 하루에 세 개 먹는다.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없었다. 그래도 씹었다. 책상을 봤다. 노트북 옆에 쌓인 책들. 『디자이너의 생각법』 『UX/UI 디자인 입문』 『타이포그래피 교과서』 다 읽지 못했다. 처음 10페이지까지만. 노트북을 열었다. 피그마 화면이 떴다. 어젯밤에 만들던 포트폴리오. 메인 페이지 레이아웃. "이 정도면 괜찮나?" 혼잣말을 했다. 대답은 없다.8시 40분, 출근 준비 가방을 챙겼다. 노트북. 충전기. 마우스. 텀블러. 텀블러는 회사에서 커피 받으려고. 자판기 커피도 돈이다. 지갑을 확인했다. 카드 한 장. 현금 만 원. 이번 주 생활비. 남은 게 이것뿐이다. 월급날은 25일. 오늘은 21일. 4일 남았다. 월급 250만원. 월세 45만원. 통신비 5만원. 교통비 8만원. 식비 30만원. 부모님 용돈 20만원. 남는 건 142만원. 거기서 데이트 비용. 옷. 화장품. 책. 저축은 한 달에 50만원 목표. 실제로는 30만원. 신발을 신었다. 운동화. 흰색. 더러워졌다. 거울을 봤다. 괜찮다. 회사 가기엔 충분하다.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는 좁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4층.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차다. 신림역까지 걸어간다. 10분. 길을 걸으면서 폰을 봤다. 인스타그램 디자인 계정. 어젯밤에 올린 포스트. 좋아요 5개. 부트캠프 동기 3명. 선배 1명. 엄마 1명. 괜찮다. 처음이니까. 신림역 2호선. 사람이 많다. 출근 시간. 지하철을 탔다. 빈자리 없다. 손잡이를 잡았다. 회사는 강남역. 30분 걸린다. 이어폰을 꺼냈다. 유튜브를 켰다. "왕초보를 위한 피그마 오토레이아웃" 구독자 2만 명. 조회수 8천. 재생했다.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오토레이아웃의 기초에 대해..." 눈을 감았다. 집중했다. 주변 소음은 사라졌다. 9시 10분, 회사 도착 회사 건물. 10층짜리. 낡았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7층.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프론트에 인사했다. 미소를 지었다. 받아주셨다. 사무실 문을 열었다. 디자인팀 자리. 선배 두 명이 이미 와 있었다. 김서연 선배. 5년차. 팀에서 제일 잘한다. 박지훈 선배. 3년차. 친절하다. "주니 씨, 왔어요?" 지훈 선배가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았다. 책상은 깨끗하다. 어제 정리했다. 맥북을 켰다. 부팅하는 동안 물을 마셨다. 슬랙을 열었다. 메시지 7개. 팀장님: "오늘 회의 10시입니다" 서연 선배: "주니 씨, 어제 보낸 파일 확인했어요" 지훈 선배: "점심 뭐 먹을까요" 피그마를 켰다. 어제 작업하던 파일. 메인 배너. 상세페이지. 썸네일 3종. 서연 선배가 피드백 남겨놓으셨다. "이 폰트 두께 조금 더 볼드하게" "여기 색상 톤 맞춰주세요" "이미지 크롭 다시" 10개. 피드백이 10개다. 한숨을 쉬었다. 작게. 들리지 않게. 마우스를 잡았다. 레이어를 선택했다. "폰트 두께... 볼드..." 수정을 시작했다. 창밖을 봤다. 강남 빌딩들. 차들. 사람들. 저 중에 나처럼 떨리는 사람이 몇 명일까. 다시 화면을 봤다. 작업에 집중했다. 저녁, 집으로 퇴근은 6시 30분에 했다. 정시는 6시. 그런데 다들 안 간다. 나도 못 간다. 서연 선배가 7시에 나가셔서 따라 나왔다. "먼저 가세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지하철을 탔다. 강남역에서 신림역. 다시 30분. 사람이 더 많다. 퇴근 시간. 서서 갔다. 다리가 아프다. 폰을 봤다. 남자친구 메시지. "저녁 먹었어?" "아직. 너는?" "회사에서 먹었어. 일찍 들어가" "ㅇㅋ" 창밖을 봤다. 어두워졌다. 신림역에 내렸다. 역 앞 편의점. 들어가서 삼각김밥 2개. 바나나우유 1개. 4500원. 카드로 긁었다. 집에 도착했다. 4층. 계단. 문을 열었다. 어둡다. 불을 켰다.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발을 벗었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흰색. 5분 동안 그냥 누워 있었다. 일어났다. 샤워를 했다. 10분.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맨투맨. 츄리닝. 삼각김밥을 먹었다. 참치마요. 맛있었다.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피그마를 열었다. 포트폴리오 파일. "오늘은 뭘 만들지." 메인 페이지는 거의 끝났다. 프로젝트 페이지를 시작해야 한다. 회사에서 한 작업을 넣을까. 아니면 개인 작업을 만들까. 고민했다. 10분. 일단 레이아웃부터. 그리드를 깔았다. 12컬럼. 타이포그래피 스타일을 정했다. Pretendard. 16px. 1.6 line-height. 색상 팔레트를 만들었다. 참고 사이트를 열었다. Behance. Pinterest. Dribbble. 좋은 걸 저장했다. 무드보드 폴더에. 시계를 봤다. 밤 10시. 아직 할 수 있다. 유튜브를 켰다. "실무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 만들기". 재생했다. 따라 했다. 30분 지났다. 눈이 침침하다. 커피를 탔다. 맥심 모카골드. 오늘 세 번째. 다시 작업했다. 자판을 두드렸다. 마우스를 움직였다. 레이어를 복사했다. 정렬했다. 색을 바꿨다. "이게 맞나?" 혼잣말을 했다. 확신이 없다. 그래도 계속했다. 밤 12시. 포트폴리오 진행률 35%. 저장했다. 노트북을 덮었다. 침대에 누웠다. 폰을 봤다. 인스타그램. 팔로우한 디자이너들 피드. 멋진 작업들. 좋아요 수백 개.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알람을 맞췄다. 내일 아침 7시. 눈을 감았다. 어둠이 왔다.내일도 7시 30분에 일어난다. 그리고 똑같은 하루. 그래도 괜찮다. 포트폴리오가 1%씩 늘어가니까.

선배 앞에서 질문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선배 앞에서 질문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오전 10시 32분 슬랙 메시지 창을 켰다 껐다를 벌써 다섯 번째다. "선배님, 혹시 이 부분이..." 지웠다. "선배님, 바쁘신데 죄송한데요..." 이것도 지웠다. 그냥 혼자 해결하려고 구글링을 시작했다. 'figma component variant how to'. 'figma 컴포넌트 변형 방법'. 'figma 여러 상태 만들기'. 검색어를 한글로 바꿨다 영어로 바꿨다 반복한다. 유튜브 영상을 세 개 봤다. 다 아는 내용이다. 내가 모르는 건 저게 아닌데. 내 상황은 조금 다른데. 시계를 봤다. 10시 47분. 15분을 날렸다.선배 책상을 슬쩍 봤다. 헤드폰을 끼고 있다. 집중 모드다. 방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2년 동안 배웠다. 선배가 헤드폰 끼면 말 걸지 말 것. 회의 30분 전엔 말 걸지 말 것. 점심 직후엔 말 걸지 말 것. 퇴근 30분 전엔 절대 말 걸지 말 것. 그럼 언제 질문하냐고. 모르겠다. 나도. 질문 한 번 하는데 걸리는 시간 질문을 만든다. 10분. 질문이 바보 같은 질문인지 확인한다. 5분. 구글링으로 혼자 해결 시도한다. 15분. 실패한다. 다시 질문을 다듬는다. 5분. 선배 눈치를 본다. 3분. 슬랙 메시지를 쓴다. 7분. 지운다. 다시 쓴다. 5분. 보낸다. 총 50분. 답장은 "어 그거? 여기 이렇게 하면 돼요 ㅎㅎ" 10초.50분 동안 나는 뭘 한 걸까. 선배한테는 10초짜리 질문이었는데. 나한테는 50분짜리 고민이었는데. 이게 맞나 싶다. '혹시'라는 단어 내 질문은 항상 '혹시'로 시작한다. "혹시 이 부분이..." "혹시 시간 되실 때..."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혹시'는 면죄부다. 질문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던지는 신호탄이다. 선배는 '혹시' 안 붙인다. "이주니씨, 이 부분 어떻게 된 거예요?" "이주니씨, 이거 확인 부탁드려요." 단호하다. 깔끔하다. 자격이 있어 보인다. 나도 저렇게 말하고 싶다. 근데 안 나온다. 입 밖으로 나올 때쯤이면 자동으로 '혹시'가 붙어 있다. "혹시 선배님..." 습관이 됐다. 아니, 체질이 됐다. 질문 앞에 붙는 것들 미안함부터 시작한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 왜 미안한지 모르겠다. 질문하는 게 잘못인가. 근데 미안하다. 선배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선배 집중을 끊는 것 같아서. 그다음은 고마움이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안 알려줬는데 벌써 감사하다고 한다. 미리 감사해야 알려줄 것 같아서. 그다음은 변명이다. "제가 찾아봤는데 잘 모르겠어서요..." 안 찾아본 것 같아서. 게으른 것 같아서. 무능한 것 같아서. 질문 하나에 붙는 게 너무 많다. 정작 질문은 한 줄인데. 앞뒤로 포장하는 게 세 줄이다.선배가 바쁠 때 제일 답답할 때다. 프로젝트 막바지다. 다들 바쁘다. 선배는 더 바쁘다. 나도 급하다. 이거 안 물어보면 진도가 안 나간다. 근데 못 물어본다. 책상 앞에 앉아서 선배 뒷모습만 본다. 언제 한가해지나. 언제 헤드폰 벗나.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같이 밥 먹으면서 슬쩍 물어볼까. 근데 점심시간에 일 얘기 하는 것도 눈치 보인다. 회의 끝나고 물어볼까. 근데 회의 끝나면 선배는 또 바빠진다. 퇴근 직전에 물어볼까. 그럼 선배 퇴근 늦어진다. 그건 더 못 한다. 결국 못 물어본다. 집에 와서 유튜브 강의를 본다. 답을 찾는다. 시간은 밤 11시. 다음 날 출근한다. 선배가 내 작업물을 본다. "이주니씨, 이 부분 왜 이렇게 했어요?" 어제 물어보려고 했다고 말 못 한다. "죄송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질문이 쌓이는 메모장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질문 목록'이 있다.컴포넌트 variant 여러 개 동시에 바꾸는 법 auto layout 간격이 안 맞을 때 이미지 export 시 테두리 잘리는 문제 선배가 쓰는 폰트 조합 기준 무드보드 만들 때 이미지 개수적어둔다. 나중에 한꺼번에 물어보려고. 근데 '나중'이 안 온다. 질문은 계속 쌓인다. 20개. 30개. 어떤 건 스스로 해결한다. 어떤 건 이제 와서 물어보기 민망해진다. 어떤 건 뭘 모르는지도 까먹는다. 메모장만 길어진다. 선배는 어떻게 배웠을까 가끔 궁금하다. 선배도 주니어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때도 질문하기 어려웠을까. "선배님도 신입 때 질문 많이 하셨어요?" 용기 내서 물어봤다. 점심 먹으면서. "많이 했죠. 모르는 거 그냥 다 물어봤어요." 그냥 다. 나는 왜 '그냥' 못 물어볼까. "주니씨도 많이 물어봐요. 모르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맞다. 당연하다. 머리로는 안다. 근데 가슴이 모른다. 손가락이 모른다. 슬랙 메시지 창 앞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혼자 해결했을 때 가끔 혼자 해결한다. 2시간 동안 구글링하고 유튜브 보고 이것저것 시도해서 답을 찾는다. 뿌듯하다. 나도 할 수 있구나. 근데 선배한테 물어봤으면 5분이었을 걸. 2시간을 썼다. 이게 성장인가. 아니면 비효율인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다음에 또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또 2시간 쓸 것 같다는 거다. 또 혼자 끙끙댈 것 같다는 거다. 또 선배 눈치 볼 것 같다는 거다. 질문했을 때 제일 무서운 반응 "그건 저번에 말씀드렸는데요." 심장이 멈춘다. "아... 죄송합니다..." 기억이 안 난다. 언제 들었지. 왜 기억이 안 나지. 메모를 했어야 했나. 녹음을 했어야 했나. 또 물어보면 안 된다. 다음부터는 절대 못 물어본다. 집에 와서 그날 나눴던 대화를 곱씹는다. 아. 그때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그때 제대로 이해 못 했으면 바로 다시 물어볼 걸. 근데 그때도 못 물어봤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갔다. 다른 팀 디자이너 선배한테는 신기하게 다른 팀 선배한테는 질문이 편하다. 같은 회사인데. 일주일에 한 번 마주치는 디자이너 선배. "선배님, 혹시 이거 여쭤봐도 될까요?" "어 그럼요." 편하다. 부담 없다. 같은 질문인데 우리 팀 선배한테 하면 심장이 쫄깃해지는데. 다른 팀 선배한테 하면 괜찮다. 왜 그럴까. 매일 보는 사이라서 그런가. 내 무능함을 매일 들키는 게 싫어서. 평가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우리 팀 선배는 내 연말 평가에 의견을 낸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가. 다 맞는 것 같다. 팀장님 질문은 더 무섭다 선배한테 질문하기 어려운데. 팀장님한테는 더 어렵다. "팀장님, 혹시..." 말을 꺼내면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다. 다들 이쪽을 보는 것 같다. 질문 수준이 낮으면 안 될 것 같다. 너무 디테일한 질문도 안 될 것 같다. 적당히 중요한데 적당히 전문적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안 한다. 팀장님한테는 거의 안 물어본다. 회의 시간에 팀장님이 "질문 있어요?" 물어본다. 없습니다. 있는데 없다고 한다. 슬랙 메시지 vs 직접 질문 슬랙이 편하다. 얼굴 안 봐도 된다. 선배 표정 안 봐도 된다. 문장을 다듬을 수 있다. 근데 슬랙도 어렵다. 보냈는데 답이 없으면. 확인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으면. '읽음' 표시가 떴는데 답이 없으면. 기다린다. 10분. 30분. 1시간. 혹시 내 질문이 이상했나. 혹시 바빠서 나중에 답하려는 건가. 다시 메시지를 보낼까. 근데 재촉하는 것 같아서. 그냥 기다린다. 직접 물어보는 건 더 어렵다. "저기... 선배님..." 목소리가 떨린다. 선배가 고개를 든다. "혹시... 아 아니에요. 나중에 시간 되실 때 여쭤볼게요." "지금 괜찮은데요?" "아 그럼... 저기..." 말이 꼬인다. 준비한 질문이 입 밖으로 안 나온다. "천천히 말해봐요." 천천히 말해도 꼬인다. 질문 잘하는 신입이 부럽다 같은 시기에 들어온 개발팀 신입이 있다. 걔는 질문을 잘한다. "이 부분 이해가 안 가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 방법이랑 저 방법 중에 뭐가 나을까요?" "제 생각은 이런데 맞는지 확인 부탁드려요." 당당하다. 자연스럽다. 선배들도 잘 알려준다. 친절하게.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근데 안 된다. 디자인이랑 개발이 다른가. 질문하는 문화가 다른가. 아니면 나만 유난히 못 하는 건가. 혼자 끙끙대는 시간 오늘도 혼자 끙끙댔다. 모달 디자인을 하는데 버튼 배치가 애매했다. 왼쪽에 둘까 오른쪽에 둘까. 취소 버튼이 먼저 올까 확인 버튼이 먼저 올까. 구글에서 'modal button placement'를 검색했다. 영어로 된 아티클을 다섯 개 읽었다. Material Design 가이드를 봤다. iOS 가이드를 봤다. 답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였다. 우리 경우는 뭔데. 선배한테 물어보면 3초 만에 답 나올 것 같은데. 근데 못 물어본다. 1시간을 썼다. 결국 감으로 정했다. 오른쪽에 확인 버튼. 왼쪽에 취소. 내일 선배가 보면 뭐라고 할까. "이주니씨, 이거 왜 이렇게 배치했어요? 우리는 반대로 하기로 했잖아요." 그럴 것 같다. 그럼 또 고친다. "네 알겠습니다." 질문을 안 하면 질문을 안 하면 혼자 헤맨다. 방향을 잘못 잡는다. 시간을 낭비한다. 결과물이 이상해진다. 그걸 알면서도 질문을 못 한다. 악순환이다. 질문 안 함 → 실수함 → 혼남 → 더 위축됨 → 질문 더 못 함 → 실수 더 많아짐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첫 단추가 '질문하기'인데. 그게 제일 어렵다. 선배의 한마디 지난주에 선배가 그랬다. "주니씨,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봐요. 나중에 고치는 게 더 힘들어요." 안다. 머리로는 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다음 날도 못 물어봤다. 선배는 이해 못 할 것 같다. 왜 질문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나도 나를 이해 못 한다.질문 버튼을 누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오늘도 슬랙 메시지를 열 번 고쳐 썼다. 보내지는 못했지만.

인스타 팔로워 32명인 내가 개인 작업을 하는 이유

인스타 팔로워 32명인 내가 개인 작업을 하는 이유

인스타 팔로워 32명인 내가 개인 작업을 하는 이유 금요일 밤 9시 퇴근했다. 오늘도 6시 반. 집에 오니까 9시 20분. 저녁 먹고 샤워하고 나니 10시.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본다. 인스타 디자인 계정. 팔로워 32명. 지난주에 올린 포스터 좋아요 8개. 그중에 6개는 부트캠프 동기들이고, 1개는 언니고, 1개는 모르는 사람. 모르는 사람 프로필 들어가본다. 팔로워 2.3만 명. 포폴 퀄리티 미쳤다. 나한테 왜 좋아요를 눌렀는지 모르겠다. 내 계정으로 돌아온다. 게시물 12개. 전부 주말에 만든 것들. 회사 작업은 하나도 없다. 올릴 수가 없어서.회사에서 만드는 것들 월요일 아침. 배너 5종 시안 요청 들어왔다. "이주니씨, 이거 점심 전까지 가능?" 가능하다고 했다. 불가능은 없다. 점심 굶으면 된다. 포토샵 켠다. 아직 포토샵이 편하다. 선배들은 다 피그마 쓰는데. 레퍼런스 찾는다. 같은 업종 경쟁사 배너 10개 저장. 비슷하게 만들면 된다. 폰트 선택. 배민 폰트. 색상 선택. 브랜드 가이드 참고. 이미지 배치. 중앙 정렬. 문구 넣기. 클라이언트가 준 텍스트 복붙. 1시간 만에 5종 완성. 팀장님한테 카톡 보낸다. "시안 확인 부탁드립니다." 10분 후 답장. "3번이 좋네요. 근데 글씨 좀 더 크게?" 수정한다. 글씨 130%로.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오케이. 이대로 진행." 끝이다. 이게 내 디자인이다. 2년 차가 만드는 것들. 포트폴리오엔 못 올린다. 내가 뭘 했는지 설명할 게 없어서.금요일 밤 11시 침대에서 일어난다. 책상으로 간다. 맥북 켠다. 개인용 맥북. 36개월 할부. 피그마 실행. "New Design File" 클릭. 빈 화면이 뜬다. 커서가 깜빡인다. 뭘 만들지 생각한다. 아무것도 안 떠오른다. 핀터레스트 켠다. "Poster Design" 검색. 스크롤 내린다. 30분. 마음에 드는 걸 찾았다. 저장한다. 무드보드 폴더에. 또 찾는다. 또 저장한다. 1시간 지났다. 이제 만든다. 아니다. 내일 만든다. 맥북 덮는다. 침대로 돌아간다. 내일은 진짜 만들 거다. 토요일 오후 3시 일어났다. 점심 먹었다. 남자친구랑 통화했다. 30분. 이제 시작한다. 피그마 켠다. 어제 봤던 레퍼런스 다시 본다. 따라 만들어본다. 폰트 찾는다. 무료 폰트 사이트. 1시간 걸려서 폰트 5개 다운로드. 하나씩 적용해본다. 마음에 안 든다. 다 삭제. 다시 찾는다. 색상 고른다. Coolors 사이트 켠다. 스페이스바 20번 누른다. 팔레트 하나 선택. 적용해본다. 이상하다. 레퍼런스랑 비교한다. 뭔가 다르다. 자간이 문제인가. 행간이 문제인가. 정렬이 문제인가. 모르겠다. 5시간 지났다. 저녁 8시. 저장한다. "Draft_ver1_final_real.fig" 내일 다시 보자.일요일 오전 11시 다시 켰다. 어제 만든 거 본다. 생각보다 괜찮다. 계속 만든다. 요소 하나 추가. 밸런스가 깨진다. 다시 뺀다. 또 이상하다. Ctrl+Z 50번. 유튜브 켠다. "피그마 레이아웃 기초" 검색. 15분짜리 영상 재생. "오토 레이아웃을 사용하면..." 이해 안 된다. 다시 돌린다. 0.75배속. "아." 이해했다. 적용해본다. 적용 안 된다. 댓글 읽는다. "저도 안 돼요ㅠㅠ" "버전 문제일 수도..." 포기한다. 수동으로 정렬. 점심 먹는다. 다시 작업한다. 오후 6시. 완성했다.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아니다. 그래도 어제보단 낫다. 저장한다. "Personal_Work_1121_FINAL_v3.fig" PNG로 익스포트. 1080x1350. 인스타 사이즈. 일요일 밤 10시 인스타 켠다. 디자인 계정으로 전환. 게시물 업로드. 이미지 선택. 캡션 쓴다. "주말 개인 작업 🎨" 지운다. "연습" 이것도 지운다. "#design #graphicdesign #posterdesign" 해시태그만 남긴다. 올리기 버튼 누른다. 손가락이 멈춘다. 이거 올려도 되나. 퀄리티가 이 정도면. 타임라인 본다. 다른 디자이너들 피드. 전부 완벽하다. 조회수 천 단위. 좋아요 백 단위. 내 걸 다시 본다. 올린다. 게시완료. 핸드폰 뒤집어놓는다. 10분 후 확인한다. 좋아요 3개. 동기 2명, 언니 1명. 괜찮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다. 지하철에서 인스타 확인. 좋아요 7개로 늘었다. 모르는 사람 2명 추가. 프로필 들어가본다. 팔로워 300명. 1200명. 나보다 적다는 생각은 안 한다. 그래도 나한테 좋아요 눌러줬다. 댓글 하나 달렸다. "색감 좋아요!" 심장이 뛴다. 답글 단다. "감사합니다😊" 이모티콘까지 신경 써서. 회사 도착. 자리에 앉는다. 선배가 말 건다. "주니야, 주말 잘 보냈어?" "네. 그냥 쉬었어요." 거짓말이다. 쉰 게 아니라 만들었다. 하지만 말 안 한다. 뭐라고 설명할지 모르겠어서. "주말에 뭐 했어요?"라고 물으면 "디자인 연습했어요"라고 할 수 없다. 이상한 사람 같아서. 회사 작업 vs 개인 작업 회사에서 배너 만든다. 클라이언트 요청대로. 팀장님 피드백대로. 브랜드 가이드대로. 정해진 틀이 있다. "여기 색 빨간색으로" "폰트 더 굵게" "이미지 이거로 교체" 시키는 대로 한다. 내 의견은 없다. 2년 차가 의견을 내면 "일단 이렇게 해보고" 결국 시키는 대로. 포폴엔 못 올린다. 내가 뭘 생각했는지 설명 못 해서.집에서 포스터 만든다. 아무도 안 시켰다. 주제는 내가 정한다. 색은 내가 고른다. 폰트는 내가 찾는다. 레이아웃은 내가 짠다. 틀리면 어때. 고치면 된다. 피드백 주는 사람도 없다. 마감도 없다. 그냥 만들고 싶어서 만든다. 이게 다르다. 회사 작업은 일이다. 개인 작업은 연습이다. 일은 완벽해야 한다. 연습은 실패해도 된다. 그 차이. 팔로워 32명의 의미 동기가 물었다. "너 인스타 왜 해? 팔로워도 없는데" 맞는 말이다. 32명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영향력 제로. 조회수 50. 좋아요 10개도 안 됨. 그럼 왜 하냐고. 모르겠다. 아니다. 안다. 기록하려고. 오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한 달 후엔 뭘 할 수 있을지. 비교하려고. 3개월 전 작업 본다. 지금 봐도 부끄럽다. 하지만 그때는 최선이었다. 지금 올리는 것도 부끄럽다. 3개월 후에 보면. 그럼 그게 성장이다. 팔로워 32명이어도. 좋아요 8개여도. 내가 본다. 내가 알 수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선배가 모르는 것 화요일 오후. 선배가 내 자리로 온다. "주니야, 이거 좀 봐줘" 화면 가리킨다. "여기 여백 어때?" "음... 좋은 것 같은데요" "그치? 나도 그런데 팀장님이 좁대" 고민한다. 선배도. "넓히면 답답해 보일 것 같은데" 선배가 말한다. 나는 고개 끄덕인다. 그 순간 생각한다. 선배도 모른다. 정답을. 경력 5년 차도 완벽한 답을 아는 건 아니다. 그냥 경험으로 판단한다. 감으로 선택한다. 확신은 없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 생각이 위로가 된다. 선배도 고민한다. 선배도 불안하다. 선배도 찾아본다. 차이는 하나. 선배는 그래도 결정한다. 나는 아직 못 한다. 결정하는 법을. 개인 작업에서 배운다. 아무도 안 가르쳐준다. 혼자 부딪혀야 한다. 금요일 밤이 기다려지는 이유 수요일. 야근했다. 시안 4번 엎었다. 집에 10시 반에 도착. 씻고 누웠다. 맥북 안 켰다. 할 기운이 없다. 목요일. 정시 퇴근. 집에서 치킨 시켰다. 넷플릭스 켰다. 맥북 안 켰다. 내일 하면 된다. 금요일. 점심시간. 동기가 단톡방에 썼다. "주말에 뭐 해?" "작업할 거 같아" "너 진짜 성실하다" 성실한 게 아니다. 하고 싶은 거다. 퇴근한다. 지하철에서 생각한다. 오늘은 뭘 만들지. 타이포 포스터? 브랜딩 목업? 집 도착. 씻고 밥 먹는다. 9시. 맥북 켠다. 피그마 새 파일. 빈 화면. 깜빡이는 커서. 시작한다. 이 순간이 좋다. 아무도 간섭 안 한다. 아무도 평가 안 한다. 시간 제한 없다. 실패해도 된다. 그냥 만든다. 회사에서 못 해본 것. 해보고 싶었던 것. 레이아웃 실험. 색 조합 테스트. 타이포 놀이. 3시간 지났다. 자정. 아직 완성 안 됐다. 괜찮다. 내일 계속하면 된다. 저장한다. "Weekend_Experiment_1129.fig" 침대에 눕는다. 내일이 기대된다. 인스타에 올리지 않는 것들 개인 작업 폴더 연다. 파일 27개. 인스타에 올린 건 12개. 나머지 15개는? 실패작이다. 만들다가 포기한 것. 완성했는데 마음에 안 드는 것. 올리기엔 부족한 것. 삭제 안 한다. 남겨둔다. 가끔 다시 본다. "이게 왜 안 됐지?" "여기가 문제였네" "이 부분은 괜찮은데" 배운다. 실패에서. 실패를 32명한테 보여줄 순 없다. 하지만 나는 본다. 이것도 기록이다. 안 되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내가 뭘 못 하는지. 포폴엔 성공만 올린다. 다들 그렇다. 하지만 과정엔 실패가 더 많다. 그걸 아는 사람이 드물다. 나는 안다. 내 폴더에 있어서. "Failed_attempt_1015.fig" "Trash_ver2.fig" "Why_not_working.fig" 파일명이 솔직하다. 이것들이 없었으면 지금 올리는 것도 없다. 누가 뭐래도 동기가 물었다. "그거 해서 뭐 달라졌어?" 솔직히 대답했다. "아직은 모르겠어" "그럼 왜 해?" "그냥... 하고 싶어서" 동기가 웃었다. "너 특이해" 특이한 거 맞다. 주말에 디자인 한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본다. "회사에서도 하는데?" "쉬어야지" "번아웃 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르다. 회사 작업이랑. 회사선 시키는 거 한다. 집에선 하고 싶은 거 한다. 회사선 평가받는다. 집에선 실험한다. 회사선 결과가 중요하다. 집에선 과정이 의미다. 누가 뭐래도. 팔로워 32명이어도. 조회수 50이어도. 좋아요 8개여도. 계속할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어서. 성장하는 게 느껴져서. 2년 차 주니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시키는 거 잘하고. 눈치 보고. 야근하고.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집에 와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내 속도로. 내 방식대로. 만드는 거. 그게 나를 디자이너로 만든다. 회사 명함이 아니라. 내 작업이.팔로워 32명이지만, 이건 내 성장 일지다.

피그마 배우는데 포토샵이 더 편한 이유

피그마 배우는데 포토샵이 더 편한 이유

피그마 배우는데 포토샵이 더 편한 이유 오늘도 피그마를 켰다가 포토샵을 켰다 아침 9시. 출근해서 피그마를 켰다. 배너 작업 들어가야 한다. 5분 지났다. 단축키가 생각 안 난다. 포토샵을 켰다. 이게 벌써 세 번째다. 이번 주만.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피그마로 작업해봐." 선배가 말했다. "요즘 피그마 안 쓰면 안 돼." 채용공고마다 써있다. "피그마 필수." 알고 있다. 머리로는. 근데 손이 포토샵을 찾는다.포토샵은 7년, 피그마는 7개월 포토샵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썼다. 과제하느라 밤샜고. 공모전하느라 울었고. 취업 포트폴리오 만들면서 손에 익었다. 7년이다. 7년. Ctrl+J 누르면 레이어 복사. Ctrl+T 누르면 자유 변형. 손이 기억한다. 생각 안 해도 된다. 피그마는 작년 여름부터. 유튜브 보면서 따라 했다. "쉽다"는 댓글들 보면서 나만 어려운가 싶었다. Auto Layout이 뭔지 몰라서 검색했다. Components 개념이 헷갈려서 또 검색했다. Frame이랑 Group 차이를 아직도 헷갈린다. 7개월 vs 7년. 당연한 거다. 근데 조급하다. 선배는 3일 만에 적응했다는데 선배 수진 누나가 말했다. "나는 피그마 배우는데 3일 걸렸어. 금방 익숙해져." 부럽다. 나는 3개월 지났는데도 매번 구글링한다. "피그마 정렬 단축키" "피그마 그리드 설정 방법" "피그마 컴포넌트 만들기" 검색 기록이 부끄럽다. 포토샵에서는 안 그랬다. 레이어 스타일 어디 있는지 안다. 마스크 어떻게 쓰는지 안다. 블렌딩 모드 언제 쓰는지 안다. 근데 피그마는 매번 찾는다. 메뉴가 어디 있는지. 이 기능은 어떻게 쓰는지. 선배는 3일. 나는 3개월인데 아직도.포토�op에서는 감이 왔는데 어제 팀장님한테 시안 보여드렸다. 피그마로 만든 거. "음... 간격이 좀 이상한데?" 간격을 봤다. 32px이었다. "32가 이상한가?" 물었다. "느낌이 좀 그래. 조정해봐." 조정했다. 28px, 30px, 36px. 모르겠다. 뭐가 맞는지. 포토샵에서는 알았다. 눈으로 보고 감으로 땄다. "아, 이 정도" 하는 느낌이 있었다. 근데 피그마는 숫자다. 8의 배수, 4의 배수, 그리드 시스템. "왜 32인지" 설명해야 한다. 설명 못 한다. 그냥 32가 예뻐 보였다. 팀장님이 물었다. "디자인 시스템 고려했어?" "...네." 거짓말이다. 생각 안 했다. 포토샵에서는 예쁘면 됐다. 피그마에서는 논리적이어야 한다. 어렵다. 협업은 좋은데 눈치 보인다 피그마의 장점. 협업. 알고 있다. 다들 그래서 쓴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같이 본다. 댓글로 피드백 받는다. 히스토리 다 남는다. 좋다. 진짜 좋다. 근데 무섭다. 내가 작업하는 거 다 보인다. 레이어 이름 대충 지으면 보인다. 시행착오하는 것도 보인다. 어제 배너 만들고 있었다. 텍스트 정렬하다가 10번 옮겼다. 왼쪽, 가운데, 오른쪽, 다시 왼쪽. 선배가 말했다. "주니야, 정렬 좀 정해. 계속 움직이네." 들켰다. 고민하는 거. 포토샵에서는 혼자 했다. 100번 고쳐도 아무도 몰랐다. 최종 파일만 보여주면 됐다. 피그마는 과정이 다 보인다. "이 사람 되게 헤매네" 하는 게 보인다. 부끄럽다.포토샵 단축키는 몸이 기억하는데 손가락이 기억한다. Ctrl+Shift+Alt+E. 레이어 병합 복사. 한 번에 누른다. 생각 안 해도. Ctrl+Shift+U. 채도 없애기. Ctrl+L. 레벨 조정. Ctrl+U. 색조/채도. 안 까먹는다. 7년 썼으니까. 피그마는 매번 찾는다. "이거 단축키 뭐더라?" 검색한다. 써먹는다. 까먹는다. 다음 날 또 검색한다. Ctrl+D가 복제인 줄 알았다. 틀렸다. Ctrl+D는 원본 선택이다. 복제는 Ctrl+D 연타. 헷갈린다. Shift 누르고 드래그하면 비율 고정. 아니다. 피그마에서는 그냥 고정이다. Shift는 다른 용도다. 포토샵 근육이 방해한다. 포토샵 손가락이 피그마를 어렵게 만든다. 새로 배워야 한다. 7년을 버려야 한다. 아깝다. 출력물은 포토샵이 맞는데 지난주 포스터 작업. 팀장님이 물었다. "피그마로 할 거야?" "...포토샵이 나을 것 같은데요." "그래, 인쇄물은 포토샵이 낫지." 안도했다. CMYK 설정. 300dpi 해상도. 출력 사이즈 mm 단위. 포토샵에서는 당연한 거다. 피그마에서는 찾아야 한다. 플러그인을. 이미지 보정도 포토샵이 낫다. 색감 조정도. 필터 효과도. "웹은 피그마, 인쇄는 포토샵"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럼 둘 다 해야 한다는 거잖아. 피그마 배운다고 포토샵 버릴 수 없다는 거잖아. 7년이 헛된 게 아니다. 위안이 된다. 근데 요즘 인쇄물 작업이 없다. 다 웹이다. 앱이다. 결국 피그마다. 컴포넌트 개념이 아직도 어렵다 Components. 피그마의 핵심이라고 한다. 버튼 하나 만들어놓으면. 100개 페이지에 쓸 수 있고. 하나만 수정하면 다 바뀐다. 좋다. 이해한다. 머리로는. 근데 만들 때가 문제다. "이게 컴포넌트가 되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복사가 나을까?" "베리언트는 언제 쓰는 거지?" 헷갈린다. 포토샵에서는 그냥 복사했다. Ctrl+J. 레이어 복사. 바꿀 거 있으면 하나씩 바꿨다. 비효율적이다. 알고 있다. 근데 확실했다. 헷갈리지 않았다. 피그마는 효율적이다. 근데 복잡하다. Master Component. Instance. Override. 용어부터 어렵다. 선배가 만든 파일 열어봤다. 컴포넌트가 20개다. 어떻게 구조 짠 건지 모르겠다. 나는 3개 만들었다가 꼬였다. 전부 Detach했다. 그냥 복사로 돌아갔다. "피그마 쓰는 의미 없잖아." 혼잣말했다. 맞다. 의미 없다. 제대로 못 쓰면. 남자친구는 "쉬운데?" 한다 남자친구 민수. 개발자다. 같은 회사. 얘는 피그마를 디자이너보다 잘 쓴다. 프로토타입 만들고. 코드 추출하고. 플러그인 설치해서 자동화하고. "별로 안 어렵던데?" 짜증 난다. "너는 개발자잖아. 논리적으로 생각하잖아." "디자인도 논리 아니야?" 말문이 막혔다. 디자인이 논리인가? 포토샵으로 할 때는 감이었다. 예쁘면 됐고. 마음에 들면 됐고. 피그마는 다르다. "왜 이렇게 했어?" 물으면 대답해야 한다. "8px 쓰는 이유가 뭐야?" 설명해야 한다. 모른다. 그냥 예뻐서. 민수가 내 파일 봤다. "레이어 이름 좀 제대로 지어. 개발할 때 헷갈려." "...알았어." Group 1, Rectangle 47, Frame 23. 기본 이름 그대로 뒀다. 포토샵에서도 그랬다. 레이어 1, 레이어 2. 근데 포토샵은 혼자 봤다. 피그마는 개발자가 본다. 달라야 한다. 습관을 바꿔야 한다. 어렵다. 결국 포토샵을 켠다 오늘도 그랬다. 피그마로 상세페이지 시작했다. 이미지 자르려고 했다. 방법을 모르겠다. 구글링했다. "피그마 이미지 크롭" "피그마 이미지 자르기" 5분 지났다. 포토샵 켰다. Marquee Tool 선택. 자르고. 저장하고. 피그마에 붙여넣었다. 30초 걸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혼잣말했다. 근데 빠르다. 확실하다. 시간 아낀다. 팀장님은 모른다. 선배도 모른다. 나만 안다. 피그마 파일인데 포토샵으로 만든 거. 죄책감 든다. 근데 어쩔 수 없다. 마감이 내일이다. 배우면서 할 시간이 없다. 언젠가는 익숙해질까 퇴근하고 유튜브 켰다. "피그마 마스터하기" "피그마 실무 팁" 구독했다. 저장했다. 주말에 봐야지. 근데 주말에 피곤하다. 월요일에 다시 미룬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알고 있다. 포토샵도 처음엔 어려웠다. 레이어 개념도 몰랐고. 마스크가 뭔지도 몰랐고. 7년 지나니까 쉬워졌다. 피그마도 그럴까? 7개월 아니라 7년 쓰면? 그때쯤이면 또 새로운 툴 나와있을 것 같다. "피그마 구세대 아니야?" "요즘은 XX 써야지." 또 배워야 한다. 또 포토샵이 편했던 것처럼. 피그마가 편했다고 말하게 될까. 상상이 안 된다.오늘도 피그마 켰다가 포토샵 켰다. 내일은 조금 덜 킬 거다. 아마도.

배너 100개 만들다 보니 생긴 일

배너 100개 만들다 보니 생긴 일

오늘도 배너다 9시 30분. 출근하고 컴퓨터 켰다. 어제 만든 배너 피드백이 메일함에 있다. "로고 좀 더 크게, 텍스트 굵기 조정" 열었다. 수정했다. 저장했다. 이게 벌써 97번째 배너다. 세어봤다. 진짜로. 엑셀에 적어뒀다. 날짜별로.처음엔 한 개에 2시간 걸렸다. 지금은 30분. 빨라진 건지, 대충 하는 건지 모르겠다. 패턴이 보인다 배너는 다 똑같다. 정확히는, 구조가 똑같다. 상단: 로고 중간: 카피 하단: 버튼 색만 바뀐다. 문구만 바뀐다. 제품 이미지만 바뀐다. 선배가 말했다. "익숙해지면 빨라져." 맞다. 빨라졌다. 근데 이게 성장인가. 그냥 복사 붙여넣기 고수가 된 건가.포토샵 단축키는 외웠다. Ctrl+J, Ctrl+T, Ctrl+G 손가락이 기억한다. 머리는 딴 생각 중이다. 48번째에 깨달은 것 "이미지 여백 좀 더 줘." 피드백을 받았다. 여백. 처음엔 몰랐다. 뭘 더 주라는 건지. 공간이 비어 보이면 불안했다. 뭐라도 채워 넣고 싶었다. 근데 48번째 배너쯤. 여백을 주니까 로고가 살았다. 텍스트가 읽혔다. 버튼이 눌러지고 싶어 보였다. "아, 이거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선배가 지나가다 봤다. "오, 이번 건 괜찮은데?" 그날 기분이 좋았다.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샀다.반복은 거짓말을 안 한다 73번째 배너. 색 조합이 이상했다. 빨강에 주황을 섞었다. 눈이 아팠다. "주니아, 이거 색 좀..." 선배가 말을 흐렸다. 수정했다. 빨강을 톤 다운시켰다. 주황 대신 베이지를 넣었다. 훨씬 나았다. "색감이 늘었네." 선배 말에 어깨가 올라갔다. 82번째. 텍스트 정렬이 삐뚤었다. 가이드 라인 없이도 보였다. 예전엔 몰랐다. 이젠 보인다. 100개를 만들면 오늘 아침. 100번째 배너를 열었다. 30분 걸렸다. 피드백 없이 통과됐다. "바로 올려도 되겠네." 기분이 이상했다. 기쁜데 허전했다. 100개를 만들면 뭐가 생길까. 실력? 포트폴리오? 아니면 그냥 숫자? 파일 폴더를 열었다. 배너_v1, 배너_v2, 배너_final 배너_final_final, 배너_진짜최종 웃겼다. 파일명이 내 성장 과정이다. 처음 배너는 레이어가 50개였다. 지금은 15개다.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처음엔 폰트를 10개 써봤다. 지금은 3개로 끝낸다. 고르는 법을 배웠다. 처음엔 색을 주르륵 깔았다. 지금은 메인 하나, 포인트 하나. 빼는 법을 배웠다. 반복이 가르쳐줬다. 선배 말보다, 강의보다. 100번 하니까 보였다. 그래도 불안하다 점심시간. 동기한테 톡을 보냈다. "나 요즘 배너만 만들어." "배우는 거 맞나?" 답장이 왔다. "나도 똑같음 ㅋㅋ" "근데 포폴엔 못 넣겠더라." 맞다. 배너 100개 만들었다고 포트폴리오에 쓸 순 없다. "반복 작업 고수"는 자랑이 아니다. 그래도. 레이어 정리는 빨라졌다. 색 조합 실패는 줄었다. 선배 눈치는... 여전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디자인 계정들 봤다. 다들 멋있는 작업물을 올린다. 브랜딩, 패키지, 아이덴티티. 나는? 배너_final_final_0516.psd 웃겼다. 근데 속상하진 않았다. 101번째는 다를까 내일 또 배너를 만들 것이다. 아마 30분 걸릴 것이다. 아마 한 번에 통과될 것이다. 그럼 뭐가 달라지나. 31분짜리 배너? 더 빠른 복붙? 모르겠다. 근데 48번째에 여백을 배웠다. 73번째에 색을 배웠다. 82번째에 정렬을 배웠다. 101번째엔 뭘 배울까. 200번째엔? 파일을 닫았다. 내일 또 연다. 반복은 지루하다. 근데 거짓말은 안 한다. 손은 빨라졌다. 눈은 정확해졌다. 자신감은... 조금 생겼다. 배너 100개. 포폴엔 못 넣어도. 내 안엔 쌓였다.100개를 만들어야 101번째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피드백 받은 후 수정하는 데 3시간이 걸리는 이유

피드백 받은 후 수정하는 데 3시간이 걸리는 이유

오늘도 3시간 선배한테 피드백 받았다. 슬랙 메시지 3줄. "전체적인 톤이 좀 더 밝았으면 좋겠어요" "여백 조정 부탁드려요" "내일 오전까지 수정본 올려주세요" 읽었다. 다시 읽었다. 또 읽었다. 뭘 고치라는 건지 모르겠다.톤이 밝다는 게 "전체적인 톤이 좀 더 밝았으면" 이게 색을 밝게 하라는 건가. 아니면 분위기를 밝게 하라는 건가. 명도를 올리라는 건가. 채도를 높이라는 건가. 파일을 열었다. 일단 색부터 건드려봤다. 배경색 #F5F5F5에서 #FFFFFF로. 너무 하얗다. 다시 #F8F8F8로. 별 차이 없다. 텍스트 색도 #333333에서 #666666으로. 아니다, 더 어두워 보인다. 원복. 30분 지났다. 이미지 색감을 건드려봤다. 포토샵 켜서 Curves 조정. 밝아졌다. 근데 이게 맞나.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다시 원본으로. 1시간 지났다. 선배가 원한 게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톤'이 색상 톤이 아니라 '느낌'을 말하는 거였을 수도. 그럼 뭘 고쳐야 하는데.여백 조정 "여백 조정 부탁드려요" 어디 여백. 위쪽인가. 아래쪽인가. 좌우인가. 전체인가. 일단 다 늘려봤다. padding 20px에서 30px로. 어색하다. 너무 넓다. 다시 25px로. 이것도 아니다. 상단만 줄여봤다. 40px에서 30px로. 답답해 보인다. 하단도 건드려봤다. 60px에서 80px로. 너무 텅 비었다. 각 섹션 사이 간격도 조정했다. 50px, 60px, 70px. 다 어색하다. 원본이 뭐였는지 까먹었다. Ctrl+Z 10번 눌렀다. 1시간 반 지났다. 결국 원본이랑 거의 똑같은 상태로 돌아왔다. 여백을 5px 늘렸다 줄였다 한 게 전부다. 이게 맞는 건가. 질문하면 되는데 "선배님, 어느 부분 여백 말씀하신 건가요?" 이 한 마디면 된다. 30초면 답 온다. 근데 못 물어본다. 이런 것도 모르나 싶을까 봐. 이미 설명했는데 또 묻는다고 생각할까 봐. 귀찮게 한다고 생각할까 봐. 선배는 바쁘다. 자기 일도 있다. 내가 물어보면 손 멈추고 답해줘야 한다. 미안하다. 그래서 혼자 3시간 동안 이것저것 만져본다.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정답일 것 같은 걸 찾는다. 2시간 반 지났다.결국 올린 파일 저장했다. "최종_수정_1204_v3.fig" 슬랙에 올렸다. "수정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메시지 보내기 전에 7번 읽었다. 마침표 위치도 고민했다. 이모지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결국 안 넣었다. 전송. 3시간 지났다. 선배 답장 왔다. "수고했어요. 근데 제가 말한 건 메인 배너 여백이었어요. 전체 말고요." 메인 배너. 전체가 아니라 메인 배너. 파일 다시 열었다. 메인 배너 여백 조정. 10분 걸렸다. 다음에도 똑같다 이게 처음이 아니다. 다음에도 똑같을 것이다. 피드백 받으면 일단 멍하다. 뭘 고치라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물어보면 된다는 걸 안다. 근데 못 물어본다. 혼자 이것저것 시도한다. 시간만 간다. 결국 틀렸다는 걸 안다. 다시 한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못 고친다. 왜냐면 물어보는 게 더 무섭다. "이것도 모르면서 디자이너 하냐"는 소리 들을까 봐. 실제로는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하는데, 내가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3시간이 걸린다.물어보는 게 3시간보다 빠르다는 걸, 사실 알고 있다.

'감이 좀 없네'라는 말을 화장실에서 들었을 때

'감이 좀 없네'라는 말을 화장실에서 들었을 때

'감이 좀 없네' 그 순간 복도에서 들렸다. "주니 시안... 음, 감이 좀 없네." 팀장님 목소리였다. 내 자리에서 5미터 떨어진 회의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나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손이 멈췄다.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다시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선배 목소리.심장이 쿵쿵거렸다. 얼굴이 뜨거웠다. 그 시안. 사흘 밤을 새운 거였다. 레퍼런스 50개 모았다. 무드보드 3번 갈아엎었다. 컬러 조합만 20번 바꿨다. 월요일 아침 9시에 슬랙으로 올렸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멘션 달고. 읽음 표시는 10분 만에 떴다. 답장은 없었다. 화요일도 답 없음. 수요일 점심때 팀장님이 "주니 시안 회의 때 보자" 했다. 지금이 그 회의다.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화장실 자리를 벗어났다. 걸었다. 복도, 계단, 화장실. 제일 안쪽 칸. 문 잠갔다. 변기 뚜껑 덮고 앉았다. 울지 않으려고 했다. 눈물이 났다. "감이 없다"는 게 뭔데. 뭘 어떻게 하면 감이 있는 건데. 레퍼런스 따라 했다고? 그러면 "참신하지 않다"고 했잖아. 내 스타일로 했다고? "브랜드랑 안 맞는다"고 했고.핸드폰 켰다. 슬랙 열었다. 내가 올린 시안 파일 다시 봤다. 뭐가 문제지. 여백? 폰트? 색? 레이아웃? 모르겠다. 전부 다 문제 같았다. 휴지로 눈 닦았다. 코 풀었다. 거울 봤다. 눈 빨갛다. 립밤 발랐다. 볼 두드렸다. 물 마셨다. 3시 47분. 자리 돌아가야 한다. 퇴근 후 6시 32분에 나왔다. 선배들보다 먼저는 못 나간다. 지하철 4호선. 신림역까지 40분. 서서 갔다. 핸드폰으로 '디자인 감각 키우는 법' 검색했다. 블로그 글 5개 읽었다. 다 똑같았다. "많이 보세요. 매일 연습하세요. 피드백 받으세요." 알아. 다 하고 있어. 근데 안 되니까 문제지. 집 도착. 7시 18분. 배고팠는데 밥 생각 안 났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 봤다. 남자친구한테 톡 왔다. "오늘 어땠어?" "그냥 그랬어." 보냈다. "힘들어? 전화할까?" "아니 괜찮아. 피곤해서 좀 쉴게." "응 푹 쉬어. 내일 보자."전화하면 울 것 같았다. 울면 설명해야 한다. 설명하면 더 초라해진다. '회사 그만둘까.' 생각했다. 진지하게. 근데 그만두고 뭐 해. 이것밖에 못 하는데. 유튜브 9시쯤 일어났다. 샤워했다. 편의점 가서 삼각김밥 샀다. 노트북 켰다. 유튜브 열었다. '디자인 감각'으로 검색. 영상 하나 클릭. "디자이너에게 감각이란 무엇인가 | 주니어 디자이너 필수 시청" 17분짜리. 다 봤다.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쌓이는 겁니다." 강사가 말했다. 유명한 사람. 수강생 후기 좋은. "좋은 디자인 100개 보면, 안 좋은 디자인이 보입니다. 1000개 보면, 왜 안 좋은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봤다. 메모했다.매일 레퍼런스 10개 저장 왜 좋은지 3줄 써보기 직접 따라 만들어보기"따라 만들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레퍼런스 모으기만 했다. 1000개 넘게 저장했다. 근데 한 번도 따라 만들어본 적 없다. 그날 밤 핀터레스트 켰다. 저장한 레퍼런스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거 하나 골랐다. 해외 브랜드 상세페이지. 미니멀한데 감각적. 여백 쓰는 게 예술. 피그마 켰다. 새 파일 만들었다. "따라하기_001" 스포이드로 색 따왔다. 폰트 찾았다. 레이아웃 재구성했다. 1시간 걸렸다. 완성했다. 나란히 놓고 봤다. 다르다. 많이 다르다. 원본은 숨 쉬는 것 같다. 내 건 답답하다. 왜지. 확대해서 봤다. 여백을 쟀다. 패딩, 마진, 라인 높이. 숫자가 달랐다. 미묘하게. 원본: 타이틀 아래 56px 여백. 내 거: 40px. 원본: 라인 높이 1.8. 내 거: 1.5. 8px 차이. 0.3 차이. 이게 차이를 만들었다. "감각은 디테일이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다음 날 출근했다. 9시 5분. 평소보다 일찍. 선배가 말 걸었다. "주니야, 어제 시안 말이야. 팀장님이..." "네. 들었어요. 복도에서." "아. 그래?" 선배가 민망한 표정. "미안. 문 닫을걸."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레퍼런스 몇 개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자리 앉았다. 슬랙 확인했다. 선배가 보낸 레퍼런스 3개. 하나씩 열어봤다. 저장했다. 여백 쟀다. 폰트 확인했다. 색상 스포이드 떴다. 점심시간. 혼자 먹었다. 핸드폰으로 어제 만든 따라하기 파일 봤다. 오후에 새 시안 시작했다. 레퍼런스 참고했다. 근데 숫자를 똑같이 맞췄다. 여백 56px. 라인 높이 1.8. 폰트 크기 48px. 5시쯤 완성했다. 팀장님한테 보냈다. "재시안 확인 부탁드립니다." 읽음. 30분 뒤 답장. "오 이번 건 괜찮네. 이 방향으로 가자." 심장이 또 쿵쾅거렸다. 근데 어제랑 다른 쿵쾅. 선배가 엄지 이모지 달았다. 나는 파일을 저장했다. "시안_최종_승인_v1" 그 후 '감이 없다'는 말. 아직도 생각난다. 근데 이제는 안다. 감이 없는 게 아니라 디테일이 없었던 거. 레퍼런스 1000개 모아도 소용없다. 하나를 제대로 뜯어봐야 한다. 매일 밤 30분. 따라 만들기 한다. 지금 43개째. 여전히 선배 시안이 더 좋다. 팀장님 피드백 받으면 떨린다. 근데 3개월 전 내 시안 보면 부끄럽다. 그게 성장이다. 감각은 하루아침에 안 생긴다. 매일 0.1%씩 쌓인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 그걸로 됐다.화장실에서 운 날, 나는 좀 더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