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받은 후 수정하는 데 3시간이 걸리는 이유
- 03 Dec, 2025
오늘도 3시간
선배한테 피드백 받았다. 슬랙 메시지 3줄.
“전체적인 톤이 좀 더 밝았으면 좋겠어요” “여백 조정 부탁드려요” “내일 오전까지 수정본 올려주세요”
읽었다. 다시 읽었다. 또 읽었다.
뭘 고치라는 건지 모르겠다.

톤이 밝다는 게
“전체적인 톤이 좀 더 밝았으면”
이게 색을 밝게 하라는 건가. 아니면 분위기를 밝게 하라는 건가. 명도를 올리라는 건가. 채도를 높이라는 건가.
파일을 열었다. 일단 색부터 건드려봤다.
배경색 #F5F5F5에서 #FFFFFF로. 너무 하얗다. 다시 #F8F8F8로. 별 차이 없다.
텍스트 색도 #333333에서 #666666으로. 아니다, 더 어두워 보인다. 원복.
30분 지났다.
이미지 색감을 건드려봤다. 포토샵 켜서 Curves 조정. 밝아졌다. 근데 이게 맞나.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다시 원본으로.
1시간 지났다.
선배가 원한 게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톤’이 색상 톤이 아니라 ‘느낌’을 말하는 거였을 수도.
그럼 뭘 고쳐야 하는데.

여백 조정
“여백 조정 부탁드려요”
어디 여백. 위쪽인가. 아래쪽인가. 좌우인가. 전체인가.
일단 다 늘려봤다. padding 20px에서 30px로. 어색하다. 너무 넓다.
다시 25px로. 이것도 아니다.
상단만 줄여봤다. 40px에서 30px로. 답답해 보인다.
하단도 건드려봤다. 60px에서 80px로. 너무 텅 비었다.
각 섹션 사이 간격도 조정했다. 50px, 60px, 70px. 다 어색하다.
원본이 뭐였는지 까먹었다. Ctrl+Z 10번 눌렀다.
1시간 반 지났다.
결국 원본이랑 거의 똑같은 상태로 돌아왔다. 여백을 5px 늘렸다 줄였다 한 게 전부다.
이게 맞는 건가.
질문하면 되는데
“선배님, 어느 부분 여백 말씀하신 건가요?”
이 한 마디면 된다. 30초면 답 온다.
근데 못 물어본다.
이런 것도 모르나 싶을까 봐. 이미 설명했는데 또 묻는다고 생각할까 봐. 귀찮게 한다고 생각할까 봐.
선배는 바쁘다. 자기 일도 있다. 내가 물어보면 손 멈추고 답해줘야 한다.
미안하다.
그래서 혼자 3시간 동안 이것저것 만져본다.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정답일 것 같은 걸 찾는다.
2시간 반 지났다.

결국 올린 파일
저장했다. “최종_수정_1204_v3.fig”
슬랙에 올렸다. “수정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메시지 보내기 전에 7번 읽었다. 마침표 위치도 고민했다. 이모지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결국 안 넣었다.
전송.
3시간 지났다.
선배 답장 왔다. “수고했어요. 근데 제가 말한 건 메인 배너 여백이었어요. 전체 말고요.”
메인 배너.
전체가 아니라 메인 배너.
파일 다시 열었다. 메인 배너 여백 조정. 10분 걸렸다.
다음에도 똑같다
이게 처음이 아니다. 다음에도 똑같을 것이다.
피드백 받으면 일단 멍하다. 뭘 고치라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물어보면 된다는 걸 안다. 근데 못 물어본다.
혼자 이것저것 시도한다. 시간만 간다.
결국 틀렸다는 걸 안다. 다시 한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못 고친다.
왜냐면 물어보는 게 더 무섭다.
“이것도 모르면서 디자이너 하냐”는 소리 들을까 봐. 실제로는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하는데, 내가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3시간이 걸린다.
물어보는 게 3시간보다 빠르다는 걸, 사실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