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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버릇 '네, 알겠습니다'에 숨겨진 불안감

입버릇 '네, 알겠습니다'에 숨겨진 불안감

입버릇 '네, 알겠습니다'에 숨겨진 불안감 아침 9시, 슬랙 알림 출근하자마자 팀장님 슬랙. "주니씨, 오늘 3시까지 배너 3종 수정 가능할까요?"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네, 알겠습니다." 보내고 나서 캘린더를 봤다. 10시 회의, 12시 런치미팅, 2시 디자인 리뷰. 남은 시간 2시간. 배너 3종이면 최소 4시간은 걸리는데. 다시 슬랙을 봤다. 이미 읽음 표시. 지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었다. 커피를 마셨다. 아직 9시 10분이다.회의실에서 디자인 리뷰 시간. 선배가 내 시안을 띄웠다. 큰 모니터에 내 작업물. 20명이 보고 있다. "이 부분 컨셉 설명 좀 해줄래요?"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컨셉? 그냥 레퍼런스 보고 만든 건데. "저기... 트렌디한 느낌으로..." "트렌디요? 구체적으로?" "...네." 선배가 대신 설명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주니씨, 이해했죠?" "네, 알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30%만 알아듣었다. 나머지 70%는 메모하면서 나중에 구글링해야 한다. 회의가 끝났다. 화장실로 갔다.점심시간 동기한테 카톡 보냈다. "나 오늘 또 '네 알겠습니다' 10번은 한 것 같아" "ㅋㅋㅋ 우리 회사말 아니냐" "근데 진짜 반도 이해 못 한 거 같은데" "다들 그래. 나중에 물어보면 돼" 나중에 물어본다. 맞는 말이다. 근데 언제? 선배들 다 바쁜데. 런치미팅에서도 또 했다. "이번 프로젝트 컨셉 잡혔죠?" "네, 알겠습니다." 안 잡혔다. 컨셉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예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샐러드를 먹었다. 맛이 없었다. 오후 3시, 배너는 3종 중 1종 완성. 팀장님이 지나가면서 봤다. "오, 잘 되고 있네요. 3시까지죠?" "...네." 불가능하다. 2종은 시작도 못 했다. 손이 떨렸다. 마우스를 놓쳤다. 슬랙을 켰다. "죄송하지만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타이핑했다. 지웠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다시 썼다. 또 지웠다. 그냥 만들자. 대충이라도.5시 30분, 제출 3종 다 보냈다. 마지막 2종은 퀄리티가 영 아니다. 알고 있다. 30분 후 피드백 왔다. "2, 3번은 조금 더 다듬어주세요. 내일 아침까지 가능할까요?" "네, 알겠습니다." 또 했다. 자동 반사. 남자친구한테 카톡 보냈다. "오늘 야근" "몇 시까지?" "모르겠어. 8시?" "힘내" 고마운데 위로가 안 됐다. 저녁 7시, 혼자 사무실에 5명 남았다. 다들 야근. 2, 3번 배너를 다시 켰다. 뭘 고쳐야 할까. "조금 더 다듬어달라"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여백? 폰트? 컬러? 전체 레이아웃? 선배한테 물어볼까. 아직 자리에 있다. 일어섰다가 앉았다. 또 물어보면 "왜 회의 때 안 물어봤어?" 소리 들을 것 같다. 그냥 내 생각대로 하자. 틀려도 어쩔 수 없다. 여백을 줄였다. 폰트를 키웠다. 컬러를 조금 바꿨다. 더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 그냥 달라 보이긴 한다. 밤 9시, 퇴근길 지하철에서 슬랙 확인. 팀장님이 좋아요 눌렀다. "수고했어요" 안도감보다 불안감이 먼저 왔다. 내가 뭘 한 거지?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건데. '알겠습니다'를 몇 번이나 말했을까. 세어보지도 못했다. 정말 알고 있었나? 반도 이해 못 한 것 같은데. 집에 도착했다.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도 똑같겠지. "네, 알겠습니다" 10번쯤 더 할 것 같다. 주말, 생각 남자친구랑 카페에 왔다. "요즘 힘들어 보여" "응... 좀" "무슨 일인데?" 설명하려다가 관뒀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회사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알아듣는 척하는 사람이야. 진짜 이해한 적은 거의 없어.' 이렇게 말하면 한심해 보일 것 같았다. "그냥 업무가 많아" 거짓말은 아니다. 반만 사실이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쓴맛이 강했다. 핸드폰을 켰다. 슬랙 알림 3개. 주말인데도 확인하는 나. "네, 알겠습니다" 타이핑하려다가 껐다. 월요일에 답하자. 월요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오늘은 다르게 해보자. 모르면 물어보자. '알겠습니다' 대신 '확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9시 도착. 선배가 말 걸었다. "주니야, 이거 오늘 중으로 가능해?" "네, 알겠습니다." 또 했다. 0.5초 만에. 계획은 무너졌다. 습관은 강했다. 책상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슬랙 알림 7개. 하나씩 읽었다. 전부 다 "네, 알겠습니다"로 답할 내용들이었다. 첫 번째 답장을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두 번째도. "네, 알겠습니다." 타이핑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 같은 것. 점심시간, 깨달음 혼자 밥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매번 '알겠습니다'라고 할까. 모르는데도. 시간 없는데도. 자신 없는데도. 이유는 간단했다. 거절하는 게 무서워서.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 무능해 보일까 봐.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면 선배들이 실망할까 봐. "시간이 부족합니다"라고 하면 의지가 없어 보일까 봐. 그래서 '네'라고 한다. 일단. 나중 일은 나중의 내가 해결한다. 항상 그랬다. 근데 나중의 나는 항상 힘들었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고. 오후, 작은 시도 디자인 리뷰 시간. 팀장님이 물었다. "이 컨셉으로 가면 될까요?" 입이 열렸다. "네"가 나올 것 같았다. 잠깐 멈췄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내 목소리였다. 떨렸지만 나왔다. "타겟 연령대가 20대 초반인지 후반인지에 따라 톤앤매너가 달라질 것 같아서요."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이네요. 20대 중반으로 잡읍시다." "네, 알겠습니다." 또 했다. 근데 이번엔 달랐다. 진짜 알아들었으니까. 회의가 끝났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작은 질문 하나. 별거 아닌데 뿌듯했다. 저녁, 남자친구와 퇴근하고 남자친구 만났다. "오늘 좀 어때?" "응... 괜찮았어." "진짜?" "응. 회의에서 질문 하나 했거든." "오 대박. 무슨 질문?" 설명했다.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말하니까 뿌듯했다. "잘했네. 원래 그렇게 하는 거지." "근데 나 또 '네 알겠습니다' 엄청 했어." "그래도 하나 물어본 거면 진전이잖아." 맞는 말이다. 0에서 1로 간 거니까. 내일은 2개 물어볼까. 모레는 3개. 천천히 가자. 화요일, 또 다른 시도 아침 회의. "이거 오늘까지 할 수 있어요?" 멈췄다. 캘린더를 봤다. "오늘은 어려울 것 같은데, 내일 오전까지는 가능할까요?" 선배가 웃었다. "그래, 그럼 내일 오전까지." 끝이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거절한 게 아니라 협상한 거였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점심 먹으면서 동기한테 카톡 보냈다. "나 오늘 데드라인 조정했어" "헐 대박" "응 ㅋㅋ 별거 아닌데 신기하다" "그게 제일 어려운 거임" 맞다. 제일 어려운 거 하나 했다. 한 달 후 여전히 '네, 알겠습니다'는 자주 말한다. 근데 빈도가 줄었다. 하루에 10번에서 5번으로. 그리고 진짜 알고 말할 때가 늘었다. 모르면 "확인하고 답변드릴게요"라고 한다. 시간 없으면 "일정 조율 가능할까요"라고 한다. 완벽하진 않다. 여전히 습관처럼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근데 예전처럼 죄책감은 안 든다. 조금씩 바뀌고 있으니까. 선배가 말했다. "요즘 주니 많이 성장한 것 같아." "감사합니다." '네, 알겠습니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작은 차이지만 큰 차이였다. 지금 여전히 불안하다. 회의 들어갈 때마다 손에 땀이 난다. 시안 보여줄 때마다 심장이 빨리 뛴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후회할 때도 있다. 근데 알았다.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는 것.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는 것. '네, 알겠습니다' 대신 '확인해볼게요' '질문 하나 있습니다' '시간 조금 더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말들을 섞어가며 쓰는 것. 그게 성장이다. 오늘도 출근한다. 슬랙 알림이 뜬다. 답장하기 전에 3초 생각한다. 진짜 알아들었나. 시간은 충분한가. 모르는 게 있나. 그리고 답한다. 가끔은 '네, 알겠습니다' 가끔은 '확인해보겠습니다' 가끔은 '질문 있습니다' 섞어서.'네, 알겠습니다'는 나쁜 말이 아니다. 다만 진짜 알 때 써야 한다.

월요일 오전 9시, 선배가 준 피드백을 보는 순간

월요일 오전 9시, 선배가 준 피드백을 보는 순간

월요일 오전 9시, 선배가 준 피드백을 보는 순간 9시 3분 출근했다.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금요일 저녁 6시에 슬랙으로 보낸 시안. "확인 부탁드립니다." 주말 동안 답장 없었다. 그게 더 무섭다.자리 앞에서 가방을 놓았다. 노트북을 켰다. 로그인 화면이 뜬다. 손가락이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떨린다. 왜 이렇게 떨리지. 옆자리 선배가 인사했다. "주말 잘 보냈어?" "네, 잘 보냈습니다." 거짓말이다. 토요일은 그 시안 생각하면서 유튜브만 봤다. 일요일은 "혹시 너무 이상한 거 아닐까" 생각하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슬랙을 연다 알림 23개. 스크롤을 내린다. 천천히. 팀 공지 2개. 개발팀 질문 4개. 그리고. 김지은 선배 멘션 1개. 클릭하기까지 5초. "@이주니 시안 확인했어. 수정 사항 파일에 코멘트 남겼으니까 월요일에 확인해봐." 파일을 연다.빨간 말풍선의 개수 첫 화면. 빨간 코멘트 3개. 스크롤. 5개 더. 또 스크롤. 4개 더. 총 12개다. 심장이 내려앉는다. 하나씩 읽는다 "여기 여백이 너무 좁아. 답답해 보여." 맞다. 나도 그랬다. 근데 왜 안 고쳤지. "이 색상은 브랜드 컬러랑 안 맞아." ...브랜드 가이드를 안 봤다. "타이포 위계가 애매해. 뭐가 중요한 건지 모르겠어." 이것도 맞다. "전체적으로 깔끔한데, 포인트가 없어." 깔끔하다는 건 칭찬인가. 아닌가. 읽으면서 얼굴이 뜨거워진다. 화장실 가고 싶다.6번째 코멘트 "주니야, 이건 왜 이렇게 배치했어? 의도가 있었어?" 이 질문이 제일 무섭다. 의도? 그냥... 예쁠 것 같아서. 참고 사이트에서 봤던 거 같아서. 근데 그걸 어떻게 말해. "예쁠 것 같아서요"라고 하면 "디자인은 예쁜 게 목적이 아니야"라고 할 거다. 작년에 한 번 들었다. 9번째 코멘트 "여기는 좋아. 이 느낌으로 전체를 맞춰봐." 읽고 또 읽는다. 좋다고 했다. "이 느낌으로." 뭐가 좋았던 걸까. 색상? 레이아웃? 여백? 모르겠다. 그냥 우연히 잘된 거다. 다시 만들라고 하면 못 만든다. 마지막 코멘트 "수고했어. 방향은 괜찮으니까 수정해서 다시 보여줘." "수고했어." 이 한 마디에 숨이 좀 쉬어진다. 망한 건 아니구나. 고칠 수 있는 거구나. 마우스를 움직인다. 파일을 저장한다. "시안_v2_수정중.fig" 10시 47분 커피를 타러 간다. 복도에서 박민주 선배를 만났다. "주니야, 월요일이네." "네..." "피드백 받았어?" "네. 12개요." "오, 그 정도면 괜찮은데? 나 처음엔 30개 받았어." 30개. 갑자기 12개가 적어 보인다. 수정을 시작한다 첫 번째 코멘트부터. "여백이 너무 좁아." 20px를 40px로. 두 번째. "색상이 안 맞아." 브랜드 가이드를 연다. 컬러 코드를 복사한다. 세 번째. "타이포 위계가 애매해." 제목 24px, 본문 16px. 좀 더 차이를 준다. 제목 28px. 하나씩 고친다. 시간이 지나간다. 12시 20분 점심시간이다. 근데 집중이 된다. 조금 더 하고 가자. 6번째 코멘트까지 수정 완료. 절반 왔다. 저장한다. "시안_v2_수정중_1220.fig" 뭔가 뿌듯하다. 밥 먹으러 간다. 오후 3시 11개 수정 완료. 마지막 하나. "여기는 좋아. 이 느낌으로 전체를 맞춰봐." 30분 동안 그 '느낌'을 찾으려고 했다. 색상인가 싶어서 다른 곳에도 적용했다. 이상하다. 레이아웃인가 싶어서 배치를 바꿨다. 더 이상하다. 여백인가 싶어서 띄웠다. 아니다. 선배 자리로 "저기, 지은 선배님." "응?" "9번 코멘트에서... 이 느낌이라는 게 정확히 뭘까요?" 선배가 내 모니터를 본다. "아, 여기? 여기는 정보가 명확하게 보이잖아. 시선 흐름이 자연스럽고. 이 정도 여백이 있으니까 답답하지 않고." "아..." "나머지는 정보를 다 넣으려고 해서 빡빡해 보여. 우선순위를 정리해봐. 뭐가 제일 중요한지." "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온다. 정보의 우선순위 제일 중요한 건 제목. 그 다음은 핵심 내용. 부가 설명은 작게. 다시 배치한다. 덜어낸다. 더 덜어낸다. 1시간 후. 보인다. '이 느낌'이 보인다. 저장한다. "시안_v2_수정완료.fig" 5시 42분 슬랙을 연다. "@김지은 수정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전송. 심장이 또 두근거린다. 근데 아까 아침이랑은 다르다. 조금 덜 무섭다. 5시 58분 답장이 왔다. "오 훨씬 나아졌다. 이 방향으로 가자. 내일 오전에 다른 페이지도 이 톤으로 맞춰서 보여줘." "네, 감사합니다!" 답장을 보냈다. 퇴근 2분 전인데 기분이 좋다. 퇴근길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침에 탔던 그 엘리베이터. 그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은 괜찮다. "훨씬 나아졌다." 이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핸드폰을 꺼낸다. 남자친구한테 카톡을 보낸다. "오늘 피드백 12개 받았는데 다 고쳤어ㅋㅋㅋ" "오 대단한데?" "선배가 나아졌대" "봐봐 잘했잖아" 기분이 좋다.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배달 음식을 시켰다. 노트북을 켰다. "내일 오전에 다른 페이지도." 미리 좀 해놓을까. 30분만. 파일을 연다. 다른 페이지를 복사한다. 오늘 배운 '그 느낌'을 적용한다. 여백을 넓힌다. 우선순위를 정리한다. 시선 흐름을 만든다. 1시간이 지났다. 근데 재밌다. 10시 47분 3개 페이지를 수정했다. 내일 아침에 확인하고 보내야지. 저장한다. 노트북을 끈다. 침대에 눕는다. 오늘 아침 9시가 생각난다. 12개의 빨간 코멘트.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근데 해냈다. 하나씩 고쳤다. 선배한테 물어봤다. 답을 찾았다. 내일 아침이 조금 기대된다. 월요일 밤 피드백은 무섭다. 특히 주말 동안 쌓인 피드백은 더 무섭다. 빨간 글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렇게 많이 틀렸나" 싶어서 속상하다. 근데. 피드백이 없으면 더 무섭다. "이거 뭐야"라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다시 해봐"라고만 하면 뭘 고쳐야 할지 모른다. 12개의 코멘트는 12개의 힌트다. "여기가 이상해" 라고 말해주는 거다. "이렇게 하면 돼" 라고 알려주는 거다. 처음엔 몰랐다. 2년 차가 되니까 조금 안다. 빨간 코멘트를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씩 읽고, 하나씩 고치면 된다. 다 고치고 나면 나아진 내가 있다.월요일 아침은 여전히 무섭지만, 이제는 조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저녁 10시, 유튜브 피그마 강의를 보고 있는 나

저녁 10시, 유튜브 피그마 강의를 보고 있는 나

저녁 10시, 또 유튜브를 켰다퇴근하고 집 와서 샤워하고 밥 먹고. 시계 보니까 9시 반. 유튜브 켰다. 피그마 강의. 오늘도 회사에서 선배한테 들었다. "주니야, 피그마로 넘어가봐. 협업 편해." 알아. 알고 있어. 근데 포토샵이 손에 익었단 말이야. 강의 재생. 15분짜리. Auto Layout 설명하는데. 5분 만에 일시정지했다. 모르겠다. 왜 이렇게 하는지. 다시 처음부터. 또 5분. 또 일시정지. 노트에 적는다. "Auto Layout = 자동 정렬?" 근데 이게 뭐가 자동인데.포토샵이 그립다 포토샵이었으면. 레이어 하나 만들고, 크기 조절하고, 정렬하고. 끝이었다. 피그마는 뭔가 다르다. 컴포넌트? 인스턴스? 오토 레이아웃? 단어부터 어렵다. 회사에서 선배가 만든 파일 열어봤다. 레이어 구조가 깔끔하다. 버튼 하나 수정하면 전체가 바뀐다. 신기하긴 한데. 내가 만든 건 엉망이다. 레이어 이름도 "사각형 123", "사각형 124". 선배 파일이랑 비교하면 부끄럽다. 강의에서 말한다. "컴포넌트 만들면 재사용이 편해요." 알아. 이론은 알아. 근데 손이 안 움직여. 11시가 됐다 강의 3개 봤다. 총 50분. 내용은 10분 정도만 이해했다. 노트북 닫을까. 내일 또 회의 있다. 9시 출근인데 8시 50분엔 도착해야 한다. 근데 안 보면 불안하다. 회사에서 또 "피그마로 해봐" 하면. 또 포토샵으로 만들고 피그마로 옮기고. 시간 두 배 걸린다. 동기 단톡방 확인했다. 친구 하나가 올렸다. "오늘 피그마로 디자인 시스템 만들어봤어!" 스크린샷 첨부. 부럽다. 얘는 벌써 디자인 시스템을. 나는 버튼 하나 만드는데 30분.댓글을 읽는다 강의 댓글창 내렸다. "너무 어려워요ㅠㅠ" "3번 돌려봤는데 이제 이해했어요" "포토샵 10년 썼는데 피그마 적응 힘드네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조금 위로된다. 답글 읽는다. "저도 한 달 걸렸어요. 괜찮아요!"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익숙해져요" 한 달. 한 달이면 할 수 있을까. 매일 1시간씩. 30시간이면 뭔가 달라질까. 계산기 켰다. 30일, 하루 1시간. 지금 10시면 11시까지. 주말엔 2시간씩. 할 수 있다. 아마. 해야 한다. 분명. 내일을 생각한다 내일 회사 가면. 또 포토샵 켤 거다. 배너 만들고, 상세페이지 수정하고. 익숙한 작업들. 근데 언젠가는. 피그마로 다 해야 한다. 선배들도 다 쓴다. 나만 포토샵 붙잡고 있을 순 없다. 강의 하나 더 켰다. "피그마 입문자를 위한 30분 완성" 30분. 11시 반이면 끝난다. 재생 버튼 눌렀다. 강사가 말한다. "처음엔 다 어렵습니다. 천천히 가세요." 천천히. 그래, 천천히. 자정이 됐다 강의 끝났다. 따라 하면서 버튼 하나 만들었다. 컴포넌트로 저장했다. 복사하니까 같이 수정된다. 신기하다. 이게 그거구나. 선배가 말한 그 기능. 저장했다. 파일 이름 "피그마 연습 1일차". 내일은 "2일차" 만들 거다. 노트북 닫았다. 불 껐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 출근하면. 포토샵 켤 거다. 당연히. 근데 퇴근하고는. 또 피그마 켤 거다. 매일 조금씩.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포토샵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레이어가 뭔지도 몰랐는데. 이제는 자야 한다. 내일 8시 50분 출근. 7시 30분 알람. 눈 감는다. Auto Layout이 머릿속에 맴돈다. 잠이 올까.내일도, 모레도, 계속 켤 거다.

부트캠프 동기들과 경력을 비교하는 나쁜 버릇

부트캠프 동기들과 경력을 비교하는 나쁜 버릇

부트캠프 동기들과 경력을 비교하는 나쁜 버릇 오늘도 단톡방을 열었다 출근길 지하철. 핸드폰을 켰다. 부트캠프 동기 단톡방에 알림 37개. '다들 새벽부터 무슨 얘기를...' 스크롤을 올렸다. 민지가 올린 사진. 새로 만든 앱 디자인. "회사에서 처음으로 메인 프로젝트 맡았어요🥹" 좋아요 이모지 12개. 축하 댓글 8개. 나는 그냥 지나쳤다. 축하한다고 치기엔 마음이 복잡했다.1년 전엔 똑같았는데 부트캠프 끝나고 1년 반. 시작은 비슷했다. 민지도 나도 포트폴리오 3개. 둘 다 취준 4개월 걸렸고. 입사 초봉도 비슷했다. 3000만원대. 그런데 지금은. 민지는 메인 프로젝트. 나는 배너 리사이즈. 뭐가 달랐을까. 매일 생각한다. 회사 규모? 민지는 스타트업 30명. 나는 중소기업 60명. 업무 강도? 민지도 야근한다고 했다. 선배 복? 그건 나도 좋은 편인데. 결국 실력 차이인가. 그 생각이 제일 무섭다. 단톡방은 전시장이 됐다 요즘 단톡방 분위기가 달라졌다. 초반엔 진짜 고민 얘기했다. "이력서 또 떨어졌어 ㅠㅠ" "면접 망했다 어쩌지" "연봉 3200 적은 거 맞죠?" 지금은. "신규 서비스 런칭했어요!" "회사에서 디자인시스템 만들라고 했어요" "애플워치 디자인 공모전 수상했습니다🏆" 다들 잘되는 얘기만 올린다. 나만 안 올린다. 올릴 게 없어서.나도 올려봤다 지난달. 용기 내서 올렸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메인 배너 맡았어요!" 사실 메인은 아니었다. 서브페이지 상단 배너. 그것도 선배가 시안 다 잡아주고. 나는 텍스트랑 이미지만 바꿨다. 그래도 올렸다. 댓글 3개 달렸다. "축하해~" "굿굿" "👍" 민지 올렸을 땐 댓글 8개였는데. 핸드폰 껐다. 부끄러웠다. 과장한 게. 비교는 습관이 됐다 아침마다 확인한다. 링크드인, 인스타, 비핸스. 동기들 포트폴리오. 누가 뭘 올렸나. 누가 어떤 회사로 이직했나. 수진이는 네이버 계열사 갔다. 경력 2년 만에. 나보다 연봉 1000만원 더 받는다고 들었다. 지훈이는 개인 작업으로 팔로워 2000명. 부업으로 로고 디자인 받는다. 건당 50만원. 나는. 회사 일 끝나면 유튜브 강의. 주말엔 개인 작업 시작했다가. '이거 올려봤자...' 하고 지운다. 인스타 팔로워 32명. 부업은 꿈도 못 꾼다. 내 실력으로 돈 받기엔.회의 시간이 제일 싫다 목요일 오전. 팀 회의. 선배가 물었다. "주니 요즘 어때? 성장하고 있어?"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 안 난다.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 선배가 웃었다. "그래, 조급해하지 마. 다들 그래." 근데 다들 안 그런 것 같은데. 민지는 성장하고 있고. 수진이는 이직했고. 지훈이는 팔로워 늘고. 나만. 제자리인 것 같은데. 회의 끝나고 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왜 이렇게 못났어.' 디자인 얘기가 아니었다. 사람 자체가. 밤 11시의 루틴 퇴근하고 집 와서. 씻고 누웠다. 핸드폰 켰다. 단톡방 다시 봤다. 현우가 올렸다. "오늘 임원 보고 통과! 3개월 프로젝트 시작합니다" 사진 첨부. 깔끔한 프레젠테이션 화면. 폰트, 간격, 컬러. 다 완벽했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근데 기회가 안 온다. 아니다. 솔직히. 기회가 와도 못 할 것 같다. 임원한테 보고? 나는 팀장님한테 시안 보여드릴 때도 손 떨리는데. 침대에 누워서. 천장 봤다. '나는 왜 이럴까.' '다들 어떻게 저렇게 잘할까.' '부트캠프 때 다 똑같이 배웠는데.' 답은 안 나왔다. 그냥 잤다. 선배가 해준 말 금요일 점심. 선배랑 식당 갔다. 밥 먹다가 선배가 물었다. "요즘 고민 있어?" 없다고 할까 했다. 그런데 나왔다. "저...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저만 못하는 것 같아서요." 선배가 웃었다. "SNS 보지 마." "네?" "SNS는 전시회야. 잘한 것만 올리지." "실패한 건 안 올려." "그래도..." "나도 그랬어. 동기들이랑 비교하고." "근데 알고 보면 다들 고민 있어." "그냥 안 올릴 뿐이지." 선배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조금. 편해졌다. 오늘 저녁의 결심 퇴근했다. 집에 왔다. 핸드폰 켰다. 단톡방 알림 12개. 안 봤다. 일단. 노트북 켰다. 피그마 열었다. 개인 작업 시작했다. 카페 브랜딩. 혼자 하는 거. 1시간 했다. 별로다. 그래도 계속했다. 2시간 했다. 조금 나아졌다. 컬러 바꿨다. 3시간 했다. 나쁘지 않다. 내일 더 해야겠다. 핸드폰 봤다. 단톡방 알림 19개 됐다. 안 열었다. 내일 보면 된다. 비교는 계속될 거다 솔직히. 내일도 비교할 것 같다. 모레도. 동기들 소식 보면. 부럽고. 초라하고. 자괴감 들 거다. 그래도. 오늘 3시간 작업했다. 내일도 할 거다. 동기들이 뭘 하든. 나는 내 속도로. 빠르진 않아도. 멈추진 않을 거다. 부트캠프 끝나고 1년 반. 앞으로 10년, 20년 남았다. 지금 배너 만들어도. 언젠간 메인 프로젝트 할 거다. 그렇게 믿고. 오늘도 켰다. 피그마를.비교는 독이다. 알면서도 먹는다. 그래도 오늘 3시간은 내 거다.

월급 250만원으로 살아가기, 그게 가능한가요?

월급 250만원으로 살아가기, 그게 가능한가요?

월급 250만원으로 살아가기, 그게 가능한가요? 통장에 찍힌 숫자 오늘 월급날이다. 3,200,000원에서 4대보험 떼면 2,500,000원.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본다. 세 번 본다. "이게 다야?" 입사할 때는 많아 보였다. 지금은 아니다.월세가 45만원이다. 보증금 500만원은 부모님이 내주셨다. "2년 뒤에 갚을게요." 그렇게 말했다. 아직 못 갚았다. 월세 내면 205만원 남는다. 돈이 나가는 곳 교통비가 13만원이다. 집에서 회사까지 지하철 1시간 10분. 환승 두 번. "택시는 언제 타봐?" 선배가 물었다. 대답 못 했다.통신비 6만원. 최저 요금제다. 넷플릭스는 친구랑 공유. 월 2,500원. 유튜브 프리미엄은 끊었다. 광고 봐도 산다. 점심은 회사 근처 식당. 8천원짜리. 한 달이면 16만원. 저녁은 편의점이나 집에서 해먹는다. 10만원 정도. 커피는 참는다. 회사 커피 마신다. "아메리카노 하나요." 그 돈이 아깝다. 205만원의 분배 월세: 45만원 교통비: 13만원 통신비: 6만원 식비: 26만원 (점심 16 + 저녁·간식 10) 관리비: 8만원 (전기·수도·가스) 생필품: 5만원 (샴푸, 세제, 화장지) 옷·화장품: 10만원 (한 달 평균) 여기까지 113만원. 남은 돈: 92만원.남은 92만원은 어디로 데이트 비용이 20만원쯤 든다. 영화, 밥, 카페. 반반 내자고 하는데. "내가 낼게." 남자친구가 그렇게 말할 때가 많다. 미안하다. 고맙기도 하다. 부모님 용돈을 못 드린다. 명절 때 10만원 드렸다. 받으시면서 눈물 보이셨다. "우리 딸 다 컸네." 아니다. 아직 멀었다. 친구들 결혼식이 시작됐다. 축의금 5만원. 일 년에 네 번. "20만원이 나간다." 계산기 두드리면서 한숨 나온다. 저축이라는 단어 목표는 한 달에 30만원 저축. 작년에는 20만원도 못 모았다. 급하게 노트북 수리. 35만원. 치과 가야 하는데 미루는 중. 15만원은 나올 것 같다. "다음 달에." 맨날 다음 달이다. 적금 하나 있다. 월 10만원. 1년 채우면 120만원. "이걸로 뭐 하지?" 생각만 하면 막막하다. 부모님 지원이 끊기면 지금도 가끔 부모님이 보내주신다. "밥값이나 써." 10만원, 20만원. 명절에 50만원. "이거 받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받는다. 받으면 울컥한다. 이게 끊기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무섭다. 보증금 500만원도 갚아야 한다. 2년 뒤면 이사 가야 할 수도 있다. "그때까지 1,200만원은 모아야지." 계산기 두드린다. 한 달에 50만원씩. 지금 저축이 월 10만원인데. 회사 사람들은 모르는 것 점심 먹으러 가면 선배들이 말한다. "요즘 괜찮은 카페 찾았어." "주말에 OO 다녀왔어. 힐링했어." "이 가방 예쁘지? 할인해서 샀어." 고개 끄덕인다. "좋겠어요." 그렇게 말한다. 선배들 월급이 얼마인지 모른다. 4년차 선배는 아마 400만원은 받을 거다. "10년 있으면 나도?"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소소한 사치 그래도 가끔 산다. 편의점 디저트. 4,500원. 이틀에 한 번 먹으면 안 되는 거 안다. 먹는다. "오늘은 힘들었으니까." 맨날 힘들다는 핑계다. 넷플릭스 공유 끊기면 어떡하지. 친구가 "나 이제 안 봐" 하면. 그것도 무섭다. 온라인 디자인 강의 하나 샀다. 12만원. 할부 3개월. 월 4만원씩. "투자야, 투자."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 강의 10%도 못 들었다. 친구들과의 차이 대학 동기들 만나면 느낀다. "나 이번에 이직했어. 연봉 4천." "주말에 부산 다녀왔어. 맛집 투어." "이 코트 괜찮지? 백화점에서 샀어." 나는 가만히 듣는다. "나는 요즘 뭐 해?" "그냥... 회사 다니지 뭐." 구체적으로 말 못 한다. 말하면 초라해 보일 것 같다. 친구 한 명은 대기업 다닌다. "우리 회사 복지 좋아. 점심 공짜야." 부럽다. 또 한 명은 공무원 됐다. "연금이 있어서 마음이 편해." 더 부럽다. 나는 뭐가 있지. 미래가 안 보이는 밤 잠들기 전에 계산한다. 매일 계산한다. "10년 뒤에 나는?" 35세. 연봉이 5천만원은 될까. 실수령 400만원 정도? 월세 대신 전세. 보증금 2억. "2억을 어떻게 모으지?" 한숨 나온다. 결혼은 어떻게 하지. 남자친구랑 결혼 이야기 나온 적 있다. "우리 돈 모아서 작은 집 하나 마련하자." 고개 끄덕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보탤 수 있을까?" 그래도 버티는 이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부모님 집으로 돌아갈까?" 진짜 생각한다. 월세 45만원 아끼면. 교통비 13만원 더 나가도 58만원 세이브다. 근데 안 간다. 돌아가면 인정하는 것 같다. "나는 혼자 못 산다." 그걸 인정하기 싫다. 선배가 그랬다. "주니어 때는 다 힘들어. 나도 그랬어." "3년만 버텨봐. 달라져." 3년. 지금 2년 차. 1년 남았다. 버틸 수 있을까. 250만원의 무게 월급 250만원. 처음엔 많아 보였다. 지금은 그냥 숫자다. 월세 내고, 밥 먹고, 교통비 내고. 남는 건 90만원 정도. 여기서 저축하고, 데이트하고, 사고 싶은 거 사고. 불가능하지 않다. 근데 여유는 없다. "이게 독립인가?" 가끔 묻는다. 돈 때문에 고민하고. 돈 때문에 포기하고. 돈 때문에 미안하고. 그래도 산다. 어떻게든 산다. 내일도 출근한다. 월급 받으면 또 계산한다.월세 45만원 내고 나면, 남은 돈으로 버티는 중이다. 부모님 지원 끊기면 진짜 무섭다. 그래도 포기는 안 한다. 아직은.

같은 회사 개발자 남친과의 관계에서 조심스러운 것들

같은 회사 개발자 남친과의 관계에서 조심스러운 것들

사내연애는 전쟁이다 같은 회사 다니면서 연애하는 거.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남친이랑 회사에서 마주치면 어색하다. 눈 마주치면 안 되고, 말 걸면 안 되고, 웃으면 안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둘이 있어도 남이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도 남이다. 1년 사귀었는데 회사 사람들은 모른다. 알면 안 된다.점심시간이 제일 힘들다 점심은 각자 먹는다. 남친은 개발팀이랑, 나는 디자인팀이랑. 처음엔 괜찮았다. 그런데 매일 그러니까 서운하다. 남친이 다른 여자 직원이랑 웃으면서 밥 먹는 거 보이면 속상하다. 나도 똑같이 하는데. 한 번은 남친이 나한테 카톡 보냈다. "오늘 점심 같이?" 고민했다. 5분 동안. 결국 "안 돼"라고 답장했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마주친 적 있다. 남친이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존댓말이다. 나도 "네, 안녕하세요" 했다. 옆에 선배들 있었다. 그날 저녁에 남친이 "미안해"라고 했다. 뭐가 미안한 건지 모르겠다. 우리 둘 다 잘못한 게 없다. 회의 때가 더 힘들다 가끔 협업 회의가 있다. 디자인팀이랑 개발팀이랑 같이. 남친이 발표하면 쳐다보면 안 된다. 열심히 노트 보는 척한다. 남친 목소리 들리는데 못 본다. 이상하다. 한 번은 내가 발표했다. 떨렸다. 남친한테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근데 남친 얼굴은 못 봤다. 다른 곳만 봤다. 회의 끝나고 남친이 카톡했다. "발표 잘했어." 고맙다. 그런데 회의실에서 칭찬해주면 안 되나. 안 된다. 알아.퇴근 시간이 제일 복잡하다 퇴근은 절대 같이 못 한다. 나는 6시 반에 나가고, 남친은 7시에 나간다. 일부러 시간 어긋나게. 한 번은 비 왔다. 우산 안 가져왔다. 남친한테 카톡했다. "우산 있어?" "응." "나 없어." "..." 30분 있다가 남친이 답장했다. "편의점에서 사." 화났다. 그냥 우산 같이 쓰면 안 되나. 안 된다는 거 아는데. 결국 편의점 우산 샀다. 5000원. 집은 같은 방향이다. 지하철도 같은 역. 그런데 다른 칸 탄다. 남친은 7호차, 나는 3호차. 집 앞에서 만난다. 그때부터 연인이다. 회사에서 못한 스킨십 다 한다. 손 잡고, 팔짱 끼고, 어깨에 기대고. 이상하다. 30분 전까지 남이었는데. 회식이 제일 위험하다 회식 때가 제일 조심해야 한다. 전체 회식이면 남친도 온다. 앉는 자리가 중요하다. 멀리 떨어져 앉는다. 눈 마주치면 안 된다. 말 걸면 안 된다. 술 마시면 더 위험하다. 취하면 실수할까 봐 무섭다. 술 잘 안 마신다. 남친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선배가 물었다. "주니 씨, 이상형이 뭐예요?" 당황했다. 남친 쳐다봤다. 실수다. 빨리 다른 데 봤다. "음... 잘 모르겠어요." 얼버무렸다. 선배들이 웃었다. "부끄러워하네." 남친도 같은 질문 받았다. "저도 잘..." 말 흐렸다. 다행이다. 2차는 안 간다. 둘 다. 핑계 대고 빠진다. "내일 아침 일찍 약속이 있어서요."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요." 회식 끝나고 집 가는 길. 남친이 말했다. "힘들다." 나도 그렇다.카톡도 조심해야 한다 회사에서 카톡 조심한다. 하트 이모티콘 절대 안 쓴다. 업무 톡이랑 헷갈릴까 봐. 실수한 적 있다. 선배한테 보낼 거 남친한테 보냈다. "선배님, 파일 확인 부탁드립니다 ❤️" 하트까지. 남친이 답장했다. "ㅋㅋㅋㅋㅋㅋ" 웃었다. 나는 식은땀 났다. 회사에서는 카톡 잘 안 한다. 점심시간에만. 화장실 가서. "밥 먹었어?" "응." "뭐 먹었어?" "김치찌개." "맛있었어?" "응." 이런 대화. 연인 같지 않다. 그냥 지인 같다. 퇴근하고 집 가면 엄청 많이 카톡한다. 회사에서 못한 거 다 한다. 하트도 보내고, 사진도 보내고, 영상통화도 한다. 보상심리인가. 회사에서 8시간 참았으니까. 소문 나면 끝이다 절대 들키면 안 된다. 소문 나면 끝이다. 한 번은 위기가 있었다. 선배가 남친 인스타 보고 물었다. "이 사람 우리 회사 개발팀 아니에요?" 내 사진 올라갔었다. 뒷모습인데. "잘 모르겠는데요." 거짓말했다. 선배가 다시 봤다. "비슷한데..." 땀 났다. 남친한테 바로 카톡했다. "인스타 사진 내려." "왜?" "선배가 봤어." 5분 만에 내렸다. 그 후로 SNS 조심한다. 남친이랑 같이 찍은 사진 안 올린다. 태그도 안 한다. 좋아요도 안 누른다. 친구들은 안다. 우리 사귄다는 거. 근데 회사 사람들은 모른다. 계속 모를 거다. 둘 중 하나 퇴사할 때까지. 언제까지 이럴까. 1년 더? 2년 더? 질투도 혼자 한다 회사에서 남친이 다른 여자 직원이랑 얘기하면 질투 난다. 근데 표현 못 한다. 한 번은 신입 여자 직원이 남친한테 자꾸 물어봤다. 개발 관련. 남친이 친절하게 알려줬다. 웃으면서. 화났다. 그런데 뭐라고 할 수 없다. 나는 남이니까. 저녁에 남친한테 말했다. "그 신입이랑 친해?" "응? 아니. 업무만." "웃으면서 알려주더라." "그냥 친절한 거야." 삐졌다. 남친이 웃었다. "질투 나?" "아니." "났네." 다음 날. 남친이 그 신입한테 좀 차갑게 대했다. 나 보라고. 고맙다. 그런데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 티 나면 안 되니까. 질투를 혼자 삭인다. 회사에서는. 집 가서 풀린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다 힘들다. 매일매일. 출근하면 남이 되고, 퇴근하면 연인 된다. 가끔 생각한다. 차라리 공개할까. 그런데 무섭다. 소문 날까 봐. 불편해질까 봐. 둘 중 하나 퇴사해야 할까 봐. 남친도 같은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럴까." "모르겠어." "힘들지?" "응." 그런데 헤어질 순 없다. 힘들어도. 조심스러워도. 사내연애.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드라마에서는 설레고 로맨틱한데. 현실은 눈치 보고, 숨기고, 참는 거다. 오늘도 출근한다. 남친이랑 같은 건물로. 그런데 남이다. 8시간 동안.퇴근하면 손 잡을 거다. 회사에서 못한 만큼.

선배가 칭찬해주면 일주일은 기분이 좋다는 게 문제다

선배가 칭찬해주면 일주일은 기분이 좋다는 게 문제다

칭찬 하나로 일주일화요일 오전 10시. 선배가 내 모니터 앞에 섰다. "이주니 씨, 이번 배너 괜찮네요." 그게 다였다. 근데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웃었다. 점심 먹으면서도 웃고. 화장실 가면서도 웃고. 퇴근길에도 웃었다. 남자친구한테 카톡했다. "선배가 괜찮대ㅠㅠ" 물음표 세 개 왔다. "그게 뭐가 그렇게 좋아?" 설명 못 했다. 나도 모르겠어서.칭찬의 유효기간수요일. 아직도 기분 좋다. 아침에 일어날 때 그 말이 들렸다. "괜찮네요."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생각했다. 선배가 한 말 다시 떠올렸다. 표정, 톤, 다 기억난다. 목요일. 여전히 좋다. 작업할 때도 신난다. 평소보다 파일 열기가 덜 무섭다. 금요일. 조금 시들었다. 칭찬받은 게 벌써 3일 전이야. 근데 그 사이 새로운 칭찬은 없어. 월요일. 거의 다 사라졌다. 이제 다시 무섭다. 이번엔 또 뭐라고 할까.내가 이상한 건가 경력 2년차다. 근데 칭찬 하나에 일주일을 산다. 친구가 말했다. "너 너무 오버 아니야?" 맞아. 나도 안다. 부트캠프 동기 단톡방에 썼다. "선배가 괜찮다고 했어!" 축하 이모티콘 세 개. 근데 하나가 물었다. "그게 그렇게 기뻐?" 기쁘다고 했다. 근데 답장 치면서 생각했다. 나만 이런가. 다른 사람들은 칭찬받아도 그냥 넘기나. 남자친구는 개발자다. 코드리뷰 받는다. "깔끔하네요" 듣는다. "아 감사합니다" 하고 끝. 나는? 일주일 간다. 되새김질한다. 그 말 한마디로 버틴다.칭찬 중독문제는 알고 있다. 나는 칭찬에 중독됐다. 한 번 받으면 또 받고 싶다. 작업할 때마다 생각한다. '이번엔 칭찬받을까.'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할까.' 그러다 피드백 받는다. "이 부분 다시 해봐요." 세상이 무너진다. 일주일 버틴 그 기분. 한 마디에 사라진다. 다시 바닥이다. 내 자존감은 선배 입에 달렸다. 선배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선배가 찌푸리면 나는 운다. 이게 맞나. 2년차가 이래도 되나.혼자 서는 연습 목요일 저녁. 선배가 먼저 퇴근했다. 혼자 남았다. 작업 마무리하고 있었다. 배너 3개. 하나 완성했다. 괜찮은 것 같다. 근데 확신이 없다. 선배한테 물어볼까. 내일 아침에. "이거 괜찮을까요?" 손이 멈췄다. 또 이러네. 또 칭찬 기다리네. 파일 저장했다. 슬랙 열었다. 타이핑했다. "내일 확인 부탁드립니다." 지웠다. 그냥 올렸다. 프로젝트 폴더에. 댓글 없이. 떨렸다. 괜찮은지 모르겠어서. 근데 올렸다.칭찬 말고 다른 걸 금요일 아침. 선배가 파일 확인했다. 슬랙 왔다. "주니 씨, 어제 올린 거 확인했어요." 심장 뛴다. 뭐래. 괜찮대? "B안 좋네요. 근데 A안은 여백이 좀 아쉬워요." "C안은 폰트 사이즈 다시 봐요." ...그게 다? 칭찬 없다. '괜찮네요'도 없다. '좋아요'도 없다. 실망했다. 솔직히. 또 칭찬 기다렸거든. 근데 생각해봤다. B안 좋다고 했어. A안도 괜찮은데 여백만. C안도 폰트만. 다 쓸 수 있다는 거야. 망한 게 아니야. 이게 더 나은 건가. 칭찬 말고. 구체적인 피드백이.일주일 버티는 법 아직도 칭찬받으면 좋다. 당연히. 누가 싫어해. 근데 요즘은 달라졌다. 조금. 칭찬받으면 기쁘다. 하루는 둥둥 뜬다. 근데 다음 날부터. 그 칭찬 곱씹지 않는다. 대신 다른 걸 본다. 내가 뭘 잘했나. 왜 칭찬받았나. 다음엔 어떻게 하지. 칭찬 자체보다. 칭찬받은 이유. 그게 더 오래 간다.선배가 또 말했다 어제. 배너 3개 최종본 올렸다. 선배가 확인했다. "주니 씨, 이번 거 좋네요." 좋았다. 진짜 좋았다. 근데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하루만 기분 좋았다. 일주일 안 갔다. 그게 슬펐나? 아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는 선배 칭찬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내 작업으로 사는 거니까. 칭찬은 보너스다. 메인이 아니야.아직도 떨린다. 파일 올릴 때. 근데 예전보다는 덜 떨린다. 칭찬 없어도 괜찮으니까. 피드백만 있으면 되니까. 그래도 가끔은. 선배가 "좋네요" 해주면. 여전히 기분 좋다. 일주일까지는 아니어도. 하루 정도는. 그 정도면 됐어. 2년차니까.칭찬은 좋다. 근데 칭찬으로만 버티면 안 된다. 일주일 가는 칭찬보다, 하루 가는 성장이 낫다.

메시지 보내기 전 10번 읽는 습관

메시지 보내기 전 10번 읽는 습관

메시지 보내기 전 10번 읽는다 9시 42분, 첫 번째 시도 메시지 창에 타이핑한다. "선배님 시안 확인 부탁드립니다" 엔터를 누르려다 멈춘다. 뭔가 이상하다. 너무 짧나? 무례한가? 지운다. "선배님, 어제 말씀하신 시안 수정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좀 낫다. 근데 '어제'가 필요한가? 선배가 기억 못 하나?또 지운다. 10분 경과 세 번째 버전이다. "선배님, 시안 수정 완료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느낌표가 과한 거 같다. 너무 들뜬 것처럼 보인다. 이건 진지한 업무다. 느낌표 지운다. "선배님, 시안 수정 완료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완료와 확인이 겹친다. 단어 선택이 마음에 안 든다. "선배님, 수정한 시안 전달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전달드립니다가 더 나은가? 아니면 공유드립니다? 손가락이 멈춘다. 타이밍 문제 지금 보내도 되나? 선배가 회의 중인가? 아침에 바쁘지 않나? 점심 전에 보내는 게 나을까? 슬랙 상태를 본다. 초록불이다. 자리에 있다는 뜻. 근데 초록불이라고 바로 보면 되나? 혹시 집중하는 중이면? 메신저 창을 최소화한다. 피그마를 연다. 시안을 다시 본다. 괜찮은 거 같은데. 근데 선배가 보면 또 뭐라고 할까. 메신저를 다시 연다.경어법 지옥 네 번째 수정. "선배님, 수정한 시안 전달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를 뺐다. 너무 구걸하는 것 같아서. 근데 너무 건조한가? "선배님, 수정한 시안 전달드립니다. 시간 나실 때 확인 부탁드립니다." 시간 나실 때가 더 공손하다. 압박하지 않는 느낌. 근데 너무 눈치 보이는 거 아냐? "선배님, 수정한 시안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심플하게. 깔끔하게. 마음에 든다. 엔터를 누르려고. 멈춘다. 혹시 이모티콘을 넣어야 하나? 선배가 가끔 웃는 이모티콘을 쓴다. 나도 써야 친근한가? 아니다. 업무 메시지에 이모티콘은 오버다. 11시 03분 21분이 지났다. 아직도 메시지를 못 보냈다. 다섯 번째 버전. "선배님, 수정 시안 전달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한'을 뺐다. '수정한'보다 '수정' 시안이 더 자연스럽다. 좋다. 이거다. 손가락이 엔터 위에 있다. 근데 파일 링크는? 링크 먼저 보내고 메시지? 메시지 먼저 보내고 링크? 링크를 복사한다. 메시지 아래에 붙인다. "선배님, 수정 시안 전달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https://figma.com/file/..." 링크가 너무 길다. 메시지가 지저분해 보인다.링크를 위로 올린다. "선배님, https://figma.com/file/... 수정 시안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게 낫다. 링크가 먼저 보인다. 아니다. 인사가 먼저여야 한다. 또 순서를 바꾼다. 최종 버전 여섯 번째. "선배님, 수정 시안 전달드립니다. https://figma.com/file/... 확인 부탁드립니다." 괜찮다. 공손하다. 명확하다. 깔끔하다. 엔터를 누른다. 아니다. 다시 지운다. '전달드립니다'와 '확인 부탁드립니다'가 똑같이 '~니다'로 끝난다. 리듬감이 없다. "선배님, 수정 시안 전달드립니다. https://figma.com/file/... 확인 부탁드려요." 마지막만 '~요'로 바꿨다. 좀 더 부드럽다. 근데 존댓말이 섞였다. 통일성이 없다. "선배님, 수정 시안 전달드립니다. https://figma.com/file/... 확인 부탁드립니다." 다시 원래대로. 11시 17분 34분이 지났다. 한 줄 메시지에 34분. 이게 정상인가? 다른 사람들은 그냥 보낸다. 생각하고 타이핑하고 엔터. 3초면 끝난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손가락이 떨린다. 엔터 키 위에서. 마지막으로 읽는다. 일곱 번째. "선배님, 수정 시안 전달드립니다. https://figma.com/file/... 확인 부탁드립니다." 문제없다. 완벽하다. 엔터를 누른다. 드디어. 11시 17분 30초 메시지가 전송됐다. 심장이 뛴다. 선배가 바로 읽었다. 초록 체크 두 개. 타이핑 중이다. 말풍선이 움직인다. "넵" 끝이다. 선배의 답장. 한 글자. 35분 고민한 메시지에 대한 답이 한 글자다. 웃음이 나온다. 허무하다. 근데 기분은 나쁘지 않다. 일단 보냈다. 선배가 확인했다. 괜찮은 거 같다. 메시지가 이상하지 않았나 보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다른 팀 동기가 말한다. "너 메시지 왜 그렇게 천천히 보내?" "응?" "아까 봤는데 30분 동안 타이핑하더라." 들켰다. "그냥... 확인하는 거." "뭘 확인해?" "문법이랑 그런 거." 동기가 웃는다. "메시지에 문법이 어딨어. 그냥 보내면 되지." 그냥 보내면 된다. 맞는 말이다. 근데 난 못 한다. 그냥 보내면 불안하다. 선배가 이상하게 볼까 봐. 무례하다고 생각할까 봐. 내가 일을 대충 한다고 오해할까 봐. 메시지 하나로 평가받는 것 같다. 오후 3시 또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이번엔 다른 선배에게. "선배님, 배너 시안 3개 준비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타이핑한다. 멈춘다. 3개가 맞나? 세 개로 써야 하나? 아니다. 3개가 더 명확하다. 근데 '준비했습니다'가 맞나? '만들었습니다'? '작업했습니다'? 지운다. "선배님, 배너 시안 3개 완성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완성이 더 낫다. 준비는 뭔가 덜 끝난 느낌. 엔터를 누른다. 아니다. 또 지운다. 시간을 본다. 벌써 5분이 지났다. 오늘도 똑같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한다. 왜 이렇게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게 어려울까. 초등학생도 카톡 한다. 친구들한테는 나도 막 보낸다. 'ㅇㅇ', '어', '굿' 이런 거. 근데 회사에서는 다르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무겁다. 선배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메시지 하나로 판단할까. 아마 안 할 것이다. 선배들도 바쁘다. 내 메시지 하나하나 기억 못 한다. 근데 나는 기억한다. 내가 보낸 모든 메시지. 어색했던 문장들. 오타 냈던 순간들. 혼자 부끄러워한다. 집에 와서 남자친구한테 톡이 왔다. "저녁 먹었어?" 바로 답한다. "응 먹었어" 3초 만에. 고민 없이. 편하다. 친구들한테도 그렇다. 왜 회사에서만 이럴까. 답을 안다. 무섭기 때문이다. 평가받는 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일 못 한다고 찍히는 게. 메시지 하나가 나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0번 읽는다. 비효율적이다. 시간 낭비다. 근데 못 고친다. 내일도 내일도 똑같을 것이다. 선배한테 메시지 보낼 때. 10분씩 고민할 것이다. 경어법 확인하고. 톤 맞추고. 타이밍 재고. 그러다 보내면. 선배는 "ㅇㅋ" 이렇게 답할 것이다. 허무할 것이다. 근데 안심할 것이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언젠가는 나도 그냥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타이핑하고 엔터. 3초 만에. 그날이 올까. 모르겠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10번 읽고 보내는 것.오늘도 메시지 하나에 35분 걸렸다. 선배 답장은 한 글자였다. 내일도 똑같겠지.

시안 보여드릴 때마다 손이 떨리는 이유

시안 보여드릴 때마다 손이 떨리는 이유

시안 보여드릴 때마다 손이 떨리는 이유 출근했다. 8시 50분. 10분 남았다. 오늘 클라이언트 피드백 회의는 2시다. 지금부터 벌써 뭔가 불안하다. 아니, 이건 알고 있는 불안감이다. 어제 만들어둔 3개 시안이 있고, 아침에 한 번 더 봤다. 별로였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손가락이 좀 저린 느낌이다. 이게 뭐 하는 거지. 아직 3시간 남았잖아. 회의 시작 2시간 전 선배한테 슬랙으로 시안 첨부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메시지를 10번 읽고 보냈다. 여전히 자신 없었다. 선배가 "그냥 회의 때 바로 설명해도 괜찮아" 라고 해줬는데, 그 말도 불안을 안겨줬다. 즉석에서 설명할 건가? 준비 시간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별거 아니라는 뜻인가? 손을 깍지 껴봤다. 떨렸다. 이미. 점심을 못 먹었다. 아니, 먹긴 했는데 반 남겼다. 선배랑 점심 먹을 때 시안 얘기가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나왔다. "어떻게 나왔어?" 물어본 건데, 대답을 제대로 못 했다. 뭔가 중얼거렸다. 선배는 "나중에 회의 때 봐도 돼" 라고 했지만, 그 표정을 다시 생각해보니 불안했다. 아 뭐야, 내가 뭘 놓친 거야. 오후 12시 30분. 여전히 손이 떨린다. 손이 떨리는 이유는 이걸 처음 느낀 건 입사 3개월 차였다. 그때 만든 배너를 선배한테 보여줬다. 선배는 "좋네" 라고 했는데, 나는 손이 떨렸다. 칭찬을 받아도 떨렸다. 그게 진짜 칭찬인지 아니면 예의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디자인을 설명하려고 마우스를 집으면 손가락이 약간 아래로 떨어진다. 음성 톤도 변한다. 약간 높아진다. 선배들이 알 것 같다. 내가 떨린다는 걸. 그러면 나를 약하다고 생각할까? 실력이 없다고? 정확하게는 이거다. 내가 만든 디자인을 보여주는 건 내 판단과 실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게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게 두렵다. 선배가 "왜 이렇게 했어?" 물어봤을 때 대답을 못할까봐. 아니, 더 정확하게는 대답했는데 그게 "감이 좀 없네" 같은 반응을 받을까봐. 손이 떨리는 건 심박수 때문이다. 심박수가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건 내가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심사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거다. 시안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신을 심사받는 느낌이다. 어제 사수님한테 따로 물어봤다. "선배님도 시안 보여드릴 때 떨려요?" 사수님은 웃고만 있었다. "가끔" 이라고 했다. 그게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30분 전부터 시작되는 두근거림 오후 1시 30분. 30분 남았다. 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얼굴이 빨갛다. 손은 뭔가 축축하다. 손을 씻었다. 찬물로. 몇 번을 씻고 나오니 조금 나았다. 1분 정도는. 회의실 옆에 앉혀있다. 화면은 띄우지 않았다. 지금 띄우면 계속 봐야 할 거 같다. 그리고 계속 보면 쓸데없는 부분만 보인다. 아 이 글꼴 너무 작은 거 아닌가. 이 색상 조합 진짜 별로다. 아 여백이. 아 여백이. 옆에 동기가 지나갔다. "떨려?" 물어봤다. 모르겠다고 했다. 거짓이다. 떨린다. 심호흡을 해봤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심호흡하면 진정된다고 했다. 4초 들이마시고 8초 내쉬고. 이건 별로였다. 오히려 더 신경 쓰인다. 들이마시면서 뭔가 불안한 게 더 느껴진다.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떨리는 게 안 보이면 괜찮을 거 같았다. 지금은 아무도 안 보고 있는데, 자기기만이다. 알고 있으면 별로였다. 내 노트북 앞에 선배 노트북 3개가 있다. 그들은 절대 떨리지 않는다. 아, 아니다. 선배 A는 한 번 떨렸다. 작년 프레젠테이션 때. 그때 클라이언트가 "뭐가 문제야?" 라고 물어봤다. 선배는 "아 제가 별로 좋은 시안 못 가져왔어요" 라고 했다. 당당했다. 나는 그렇게 못 한다. 나는 "네 알겠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이 정도가 한계다. 오후 1시 50분. 아, 10분 남았다. 손이 떨린다.떨림을 숨기려는 노력들 회의 때 마우스를 잡지 않는 게 내 습관이 됐다. 누가 마우스 들고 설명해달라고 하면 양손 모두로 잡는다. 한 손은 마우스, 한 손은 마우스 위. 떨림을 고정하는 거다. 그래도 화면에 마우스 커서가 흔들린다. 선배들이 봤을까. 음성 톤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떨릴 땐 목소리도 떨리기 때문이다. 근데 목소리를 의식하면 뭔가 어색해진다. 자연스럽지 않다. 오늘 선배가 "마이크 안 나왔나?" 물어봤다. "네, 잘 들려요" 라고 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설명하는 동안 시안 화면을 안 본다. 선배들만 본다. 반응을 본다. 선배 A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게 뭐야, 나쁜 반응일까. 아니야, 집중하는 건가. 아니야, 의심하는 건가. 그 표정을 읽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내 설명이 끊긴다. 끝나고 나면 화장실 간다. 항상 간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다. 거울을 안 본다. 지금 얼굴이 어떨지 알고 싶지 않다. 손 위만 본다. 아직도 떨려있다. 2분 정도 지나서 진정된다. 이게 맞나. 뭐가 문제일까. 선배들은 왜 떨리지 않는 거야. 선배 B한테 물어봤다. "어떻게 떨리지 않으세요?" 선배는 "누가 안 떨린다고 했어?" 라고 했다. "떨리는데 티 안 내는 거지" 라고 했다. 아, 그래서 시작됐다. 떨림을 숨기려는 게 아니라 떨림을 만드는 거다. 내가 만드는 거다. 오후 4시. 회의 끝났다. 클라이언트가 "일단 봐봅시다" 라고 했다. 뭐가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모르겠다. 선배는 "괜찮은 것 같은데?" 라고 했다. 손이 아직도 약간 떨린다. 이제 고칠 시간이다.결국 손이 떨리는 게 맞는 거 손이 떨린다는 건 내가 신경 쓴다는 뜻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손은 안 떨린다. 그런데 내 디자인을 별거로 취급할 수 없다. 그게 내 작업이고, 내 판단이고, 내 실력이기 때문이다. 입사 2년차가 되면서 느낀 게 있다. 손이 떨리는 건 나쁜 신호가 아니라는 거다. 손이 안 떨리는 게 이상한 거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최근에 한 배너가 잘 나왔다. 클라이언트가 바로 승인했다. 그 배너를 만들 때도 손이 떨렸다. 오히려 그때가 더 떨렸다. 뭔가 좋은 걸 만들었다고 느껴질 때. 그럼 실패할까봐 더 떨린다. 더 신경 쓴다. 불안한 게 나쁜 건 아니다. 불안한 게 내가 성장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도 손이 떨린다. 밤 11시다. 내일 수정할 3개 시안을 봤다. 여전히 부족하다. 손이 떨린다. 내일도 쨍 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시안을 봐야겠다.손이 떨린다는 건, 내가 아직 성장 중이라는 뜻이다.[IMAGE_1] [IMAGE_2] [IMAGE_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