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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기가
- 23 Dec, 2025
선배 앞에서 질문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오전 10시 32분 슬랙 메시지 창을 켰다 껐다를 벌써 다섯 번째다. "선배님, 혹시 이 부분이..." 지웠다. "선배님, 바쁘신데 죄송한데요..." 이것도 지웠다. 그냥 혼자 해결하려고 구글링을 시작했다. 'figma component variant how to'. 'figma 컴포넌트 변형 방법'. 'figma 여러 상태 만들기'. 검색어를 한글로 바꿨다 영어로 바꿨다 반복한다. 유튜브 영상을 세 개 봤다. 다 아는 내용이다. 내가 모르는 건 저게 아닌데. 내 상황은 조금 다른데. 시계를 봤다. 10시 47분. 15분을 날렸다.선배 책상을 슬쩍 봤다. 헤드폰을 끼고 있다. 집중 모드다. 방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2년 동안 배웠다. 선배가 헤드폰 끼면 말 걸지 말 것. 회의 30분 전엔 말 걸지 말 것. 점심 직후엔 말 걸지 말 것. 퇴근 30분 전엔 절대 말 걸지 말 것. 그럼 언제 질문하냐고. 모르겠다. 나도. 질문 한 번 하는데 걸리는 시간 질문을 만든다. 10분. 질문이 바보 같은 질문인지 확인한다. 5분. 구글링으로 혼자 해결 시도한다. 15분. 실패한다. 다시 질문을 다듬는다. 5분. 선배 눈치를 본다. 3분. 슬랙 메시지를 쓴다. 7분. 지운다. 다시 쓴다. 5분. 보낸다. 총 50분. 답장은 "어 그거? 여기 이렇게 하면 돼요 ㅎㅎ" 10초.50분 동안 나는 뭘 한 걸까. 선배한테는 10초짜리 질문이었는데. 나한테는 50분짜리 고민이었는데. 이게 맞나 싶다. '혹시'라는 단어 내 질문은 항상 '혹시'로 시작한다. "혹시 이 부분이..." "혹시 시간 되실 때..."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혹시'는 면죄부다. 질문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던지는 신호탄이다. 선배는 '혹시' 안 붙인다. "이주니씨, 이 부분 어떻게 된 거예요?" "이주니씨, 이거 확인 부탁드려요." 단호하다. 깔끔하다. 자격이 있어 보인다. 나도 저렇게 말하고 싶다. 근데 안 나온다. 입 밖으로 나올 때쯤이면 자동으로 '혹시'가 붙어 있다. "혹시 선배님..." 습관이 됐다. 아니, 체질이 됐다. 질문 앞에 붙는 것들 미안함부터 시작한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 왜 미안한지 모르겠다. 질문하는 게 잘못인가. 근데 미안하다. 선배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선배 집중을 끊는 것 같아서. 그다음은 고마움이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안 알려줬는데 벌써 감사하다고 한다. 미리 감사해야 알려줄 것 같아서. 그다음은 변명이다. "제가 찾아봤는데 잘 모르겠어서요..." 안 찾아본 것 같아서. 게으른 것 같아서. 무능한 것 같아서. 질문 하나에 붙는 게 너무 많다. 정작 질문은 한 줄인데. 앞뒤로 포장하는 게 세 줄이다.선배가 바쁠 때 제일 답답할 때다. 프로젝트 막바지다. 다들 바쁘다. 선배는 더 바쁘다. 나도 급하다. 이거 안 물어보면 진도가 안 나간다. 근데 못 물어본다. 책상 앞에 앉아서 선배 뒷모습만 본다. 언제 한가해지나. 언제 헤드폰 벗나.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같이 밥 먹으면서 슬쩍 물어볼까. 근데 점심시간에 일 얘기 하는 것도 눈치 보인다. 회의 끝나고 물어볼까. 근데 회의 끝나면 선배는 또 바빠진다. 퇴근 직전에 물어볼까. 그럼 선배 퇴근 늦어진다. 그건 더 못 한다. 결국 못 물어본다. 집에 와서 유튜브 강의를 본다. 답을 찾는다. 시간은 밤 11시. 다음 날 출근한다. 선배가 내 작업물을 본다. "이주니씨, 이 부분 왜 이렇게 했어요?" 어제 물어보려고 했다고 말 못 한다. "죄송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질문이 쌓이는 메모장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질문 목록'이 있다.컴포넌트 variant 여러 개 동시에 바꾸는 법 auto layout 간격이 안 맞을 때 이미지 export 시 테두리 잘리는 문제 선배가 쓰는 폰트 조합 기준 무드보드 만들 때 이미지 개수적어둔다. 나중에 한꺼번에 물어보려고. 근데 '나중'이 안 온다. 질문은 계속 쌓인다. 20개. 30개. 어떤 건 스스로 해결한다. 어떤 건 이제 와서 물어보기 민망해진다. 어떤 건 뭘 모르는지도 까먹는다. 메모장만 길어진다. 선배는 어떻게 배웠을까 가끔 궁금하다. 선배도 주니어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때도 질문하기 어려웠을까. "선배님도 신입 때 질문 많이 하셨어요?" 용기 내서 물어봤다. 점심 먹으면서. "많이 했죠. 모르는 거 그냥 다 물어봤어요." 그냥 다. 나는 왜 '그냥' 못 물어볼까. "주니씨도 많이 물어봐요. 모르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맞다. 당연하다. 머리로는 안다. 근데 가슴이 모른다. 손가락이 모른다. 슬랙 메시지 창 앞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혼자 해결했을 때 가끔 혼자 해결한다. 2시간 동안 구글링하고 유튜브 보고 이것저것 시도해서 답을 찾는다. 뿌듯하다. 나도 할 수 있구나. 근데 선배한테 물어봤으면 5분이었을 걸. 2시간을 썼다. 이게 성장인가. 아니면 비효율인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다음에 또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또 2시간 쓸 것 같다는 거다. 또 혼자 끙끙댈 것 같다는 거다. 또 선배 눈치 볼 것 같다는 거다. 질문했을 때 제일 무서운 반응 "그건 저번에 말씀드렸는데요." 심장이 멈춘다. "아... 죄송합니다..." 기억이 안 난다. 언제 들었지. 왜 기억이 안 나지. 메모를 했어야 했나. 녹음을 했어야 했나. 또 물어보면 안 된다. 다음부터는 절대 못 물어본다. 집에 와서 그날 나눴던 대화를 곱씹는다. 아. 그때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그때 제대로 이해 못 했으면 바로 다시 물어볼 걸. 근데 그때도 못 물어봤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갔다. 다른 팀 디자이너 선배한테는 신기하게 다른 팀 선배한테는 질문이 편하다. 같은 회사인데. 일주일에 한 번 마주치는 디자이너 선배. "선배님, 혹시 이거 여쭤봐도 될까요?" "어 그럼요." 편하다. 부담 없다. 같은 질문인데 우리 팀 선배한테 하면 심장이 쫄깃해지는데. 다른 팀 선배한테 하면 괜찮다. 왜 그럴까. 매일 보는 사이라서 그런가. 내 무능함을 매일 들키는 게 싫어서. 평가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우리 팀 선배는 내 연말 평가에 의견을 낸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가. 다 맞는 것 같다. 팀장님 질문은 더 무섭다 선배한테 질문하기 어려운데. 팀장님한테는 더 어렵다. "팀장님, 혹시..." 말을 꺼내면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다. 다들 이쪽을 보는 것 같다. 질문 수준이 낮으면 안 될 것 같다. 너무 디테일한 질문도 안 될 것 같다. 적당히 중요한데 적당히 전문적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안 한다. 팀장님한테는 거의 안 물어본다. 회의 시간에 팀장님이 "질문 있어요?" 물어본다. 없습니다. 있는데 없다고 한다. 슬랙 메시지 vs 직접 질문 슬랙이 편하다. 얼굴 안 봐도 된다. 선배 표정 안 봐도 된다. 문장을 다듬을 수 있다. 근데 슬랙도 어렵다. 보냈는데 답이 없으면. 확인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으면. '읽음' 표시가 떴는데 답이 없으면. 기다린다. 10분. 30분. 1시간. 혹시 내 질문이 이상했나. 혹시 바빠서 나중에 답하려는 건가. 다시 메시지를 보낼까. 근데 재촉하는 것 같아서. 그냥 기다린다. 직접 물어보는 건 더 어렵다. "저기... 선배님..." 목소리가 떨린다. 선배가 고개를 든다. "혹시... 아 아니에요. 나중에 시간 되실 때 여쭤볼게요." "지금 괜찮은데요?" "아 그럼... 저기..." 말이 꼬인다. 준비한 질문이 입 밖으로 안 나온다. "천천히 말해봐요." 천천히 말해도 꼬인다. 질문 잘하는 신입이 부럽다 같은 시기에 들어온 개발팀 신입이 있다. 걔는 질문을 잘한다. "이 부분 이해가 안 가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 방법이랑 저 방법 중에 뭐가 나을까요?" "제 생각은 이런데 맞는지 확인 부탁드려요." 당당하다. 자연스럽다. 선배들도 잘 알려준다. 친절하게.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근데 안 된다. 디자인이랑 개발이 다른가. 질문하는 문화가 다른가. 아니면 나만 유난히 못 하는 건가. 혼자 끙끙대는 시간 오늘도 혼자 끙끙댔다. 모달 디자인을 하는데 버튼 배치가 애매했다. 왼쪽에 둘까 오른쪽에 둘까. 취소 버튼이 먼저 올까 확인 버튼이 먼저 올까. 구글에서 'modal button placement'를 검색했다. 영어로 된 아티클을 다섯 개 읽었다. Material Design 가이드를 봤다. iOS 가이드를 봤다. 답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였다. 우리 경우는 뭔데. 선배한테 물어보면 3초 만에 답 나올 것 같은데. 근데 못 물어본다. 1시간을 썼다. 결국 감으로 정했다. 오른쪽에 확인 버튼. 왼쪽에 취소. 내일 선배가 보면 뭐라고 할까. "이주니씨, 이거 왜 이렇게 배치했어요? 우리는 반대로 하기로 했잖아요." 그럴 것 같다. 그럼 또 고친다. "네 알겠습니다." 질문을 안 하면 질문을 안 하면 혼자 헤맨다. 방향을 잘못 잡는다. 시간을 낭비한다. 결과물이 이상해진다. 그걸 알면서도 질문을 못 한다. 악순환이다. 질문 안 함 → 실수함 → 혼남 → 더 위축됨 → 질문 더 못 함 → 실수 더 많아짐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첫 단추가 '질문하기'인데. 그게 제일 어렵다. 선배의 한마디 지난주에 선배가 그랬다. "주니씨,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봐요. 나중에 고치는 게 더 힘들어요." 안다. 머리로는 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다음 날도 못 물어봤다. 선배는 이해 못 할 것 같다. 왜 질문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나도 나를 이해 못 한다.질문 버튼을 누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오늘도 슬랙 메시지를 열 번 고쳐 썼다. 보내지는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