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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Dec, 2025
월요일 오전 9시, 선배가 준 피드백을 보는 순간
월요일 오전 9시, 선배가 준 피드백을 보는 순간 9시 3분 출근했다.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금요일 저녁 6시에 슬랙으로 보낸 시안. "확인 부탁드립니다." 주말 동안 답장 없었다. 그게 더 무섭다.자리 앞에서 가방을 놓았다. 노트북을 켰다. 로그인 화면이 뜬다. 손가락이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떨린다. 왜 이렇게 떨리지. 옆자리 선배가 인사했다. "주말 잘 보냈어?" "네, 잘 보냈습니다." 거짓말이다. 토요일은 그 시안 생각하면서 유튜브만 봤다. 일요일은 "혹시 너무 이상한 거 아닐까" 생각하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슬랙을 연다 알림 23개. 스크롤을 내린다. 천천히. 팀 공지 2개. 개발팀 질문 4개. 그리고. 김지은 선배 멘션 1개. 클릭하기까지 5초. "@이주니 시안 확인했어. 수정 사항 파일에 코멘트 남겼으니까 월요일에 확인해봐." 파일을 연다.빨간 말풍선의 개수 첫 화면. 빨간 코멘트 3개. 스크롤. 5개 더. 또 스크롤. 4개 더. 총 12개다. 심장이 내려앉는다. 하나씩 읽는다 "여기 여백이 너무 좁아. 답답해 보여." 맞다. 나도 그랬다. 근데 왜 안 고쳤지. "이 색상은 브랜드 컬러랑 안 맞아." ...브랜드 가이드를 안 봤다. "타이포 위계가 애매해. 뭐가 중요한 건지 모르겠어." 이것도 맞다. "전체적으로 깔끔한데, 포인트가 없어." 깔끔하다는 건 칭찬인가. 아닌가. 읽으면서 얼굴이 뜨거워진다. 화장실 가고 싶다.6번째 코멘트 "주니야, 이건 왜 이렇게 배치했어? 의도가 있었어?" 이 질문이 제일 무섭다. 의도? 그냥... 예쁠 것 같아서. 참고 사이트에서 봤던 거 같아서. 근데 그걸 어떻게 말해. "예쁠 것 같아서요"라고 하면 "디자인은 예쁜 게 목적이 아니야"라고 할 거다. 작년에 한 번 들었다. 9번째 코멘트 "여기는 좋아. 이 느낌으로 전체를 맞춰봐." 읽고 또 읽는다. 좋다고 했다. "이 느낌으로." 뭐가 좋았던 걸까. 색상? 레이아웃? 여백? 모르겠다. 그냥 우연히 잘된 거다. 다시 만들라고 하면 못 만든다. 마지막 코멘트 "수고했어. 방향은 괜찮으니까 수정해서 다시 보여줘." "수고했어." 이 한 마디에 숨이 좀 쉬어진다. 망한 건 아니구나. 고칠 수 있는 거구나. 마우스를 움직인다. 파일을 저장한다. "시안_v2_수정중.fig" 10시 47분 커피를 타러 간다. 복도에서 박민주 선배를 만났다. "주니야, 월요일이네." "네..." "피드백 받았어?" "네. 12개요." "오, 그 정도면 괜찮은데? 나 처음엔 30개 받았어." 30개. 갑자기 12개가 적어 보인다. 수정을 시작한다 첫 번째 코멘트부터. "여백이 너무 좁아." 20px를 40px로. 두 번째. "색상이 안 맞아." 브랜드 가이드를 연다. 컬러 코드를 복사한다. 세 번째. "타이포 위계가 애매해." 제목 24px, 본문 16px. 좀 더 차이를 준다. 제목 28px. 하나씩 고친다. 시간이 지나간다. 12시 20분 점심시간이다. 근데 집중이 된다. 조금 더 하고 가자. 6번째 코멘트까지 수정 완료. 절반 왔다. 저장한다. "시안_v2_수정중_1220.fig" 뭔가 뿌듯하다. 밥 먹으러 간다. 오후 3시 11개 수정 완료. 마지막 하나. "여기는 좋아. 이 느낌으로 전체를 맞춰봐." 30분 동안 그 '느낌'을 찾으려고 했다. 색상인가 싶어서 다른 곳에도 적용했다. 이상하다. 레이아웃인가 싶어서 배치를 바꿨다. 더 이상하다. 여백인가 싶어서 띄웠다. 아니다. 선배 자리로 "저기, 지은 선배님." "응?" "9번 코멘트에서... 이 느낌이라는 게 정확히 뭘까요?" 선배가 내 모니터를 본다. "아, 여기? 여기는 정보가 명확하게 보이잖아. 시선 흐름이 자연스럽고. 이 정도 여백이 있으니까 답답하지 않고." "아..." "나머지는 정보를 다 넣으려고 해서 빡빡해 보여. 우선순위를 정리해봐. 뭐가 제일 중요한지." "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온다. 정보의 우선순위 제일 중요한 건 제목. 그 다음은 핵심 내용. 부가 설명은 작게. 다시 배치한다. 덜어낸다. 더 덜어낸다. 1시간 후. 보인다. '이 느낌'이 보인다. 저장한다. "시안_v2_수정완료.fig" 5시 42분 슬랙을 연다. "@김지은 수정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전송. 심장이 또 두근거린다. 근데 아까 아침이랑은 다르다. 조금 덜 무섭다. 5시 58분 답장이 왔다. "오 훨씬 나아졌다. 이 방향으로 가자. 내일 오전에 다른 페이지도 이 톤으로 맞춰서 보여줘." "네, 감사합니다!" 답장을 보냈다. 퇴근 2분 전인데 기분이 좋다. 퇴근길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침에 탔던 그 엘리베이터. 그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은 괜찮다. "훨씬 나아졌다." 이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핸드폰을 꺼낸다. 남자친구한테 카톡을 보낸다. "오늘 피드백 12개 받았는데 다 고쳤어ㅋㅋㅋ" "오 대단한데?" "선배가 나아졌대" "봐봐 잘했잖아" 기분이 좋다.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배달 음식을 시켰다. 노트북을 켰다. "내일 오전에 다른 페이지도." 미리 좀 해놓을까. 30분만. 파일을 연다. 다른 페이지를 복사한다. 오늘 배운 '그 느낌'을 적용한다. 여백을 넓힌다. 우선순위를 정리한다. 시선 흐름을 만든다. 1시간이 지났다. 근데 재밌다. 10시 47분 3개 페이지를 수정했다. 내일 아침에 확인하고 보내야지. 저장한다. 노트북을 끈다. 침대에 눕는다. 오늘 아침 9시가 생각난다. 12개의 빨간 코멘트.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근데 해냈다. 하나씩 고쳤다. 선배한테 물어봤다. 답을 찾았다. 내일 아침이 조금 기대된다. 월요일 밤 피드백은 무섭다. 특히 주말 동안 쌓인 피드백은 더 무섭다. 빨간 글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렇게 많이 틀렸나" 싶어서 속상하다. 근데. 피드백이 없으면 더 무섭다. "이거 뭐야"라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다시 해봐"라고만 하면 뭘 고쳐야 할지 모른다. 12개의 코멘트는 12개의 힌트다. "여기가 이상해" 라고 말해주는 거다. "이렇게 하면 돼" 라고 알려주는 거다. 처음엔 몰랐다. 2년 차가 되니까 조금 안다. 빨간 코멘트를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씩 읽고, 하나씩 고치면 된다. 다 고치고 나면 나아진 내가 있다.월요일 아침은 여전히 무섭지만, 이제는 조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