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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하면서
- 22 Dec, 2025
리사이즈 작업을 반복하면서 배운 것
리사이즈 작업을 반복하면서 배운 것 오늘도 리사이즈 오후 2시. 선배가 파일을 넘긴다. "이거 720x1280, 640x640, 1080x1080 세 가지로 리사이즈해줘." "네." 세 번째 대답이다. 오늘만.리사이즈 작업. 같은 배너를 다른 크기로 만드는 일. 글자 위치 조정하고, 이미지 크롭하고, 여백 맞추고. 처음엔 단순 노가다인 줄 알았다. 입사 2개월 차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게 뭐라고 3시간이나 걸려." "이거 하나 만들 시간에 새 디자인을 하는 게 낫지 않나." 틀렸다. 지금은 안다. 첫 리사이즈, 첫 좌절 작년 9월. 첫 리사이즈 작업을 받았다. 이벤트 배너 하나를 5가지 사이즈로.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다. 4시간 걸렸다. 640x640으로 줄이니까 글자가 안 읽혔다. 글자 크기를 키우니까 이미지가 답답해 보였다. 이미지를 줄이니까 여백이 어색했다. 선배가 확인했다. "음... 이건 좀." "네?" "720x1280은 세로니까 구도를 다시 잡아야 해. 그냥 늘린 거 아니지?" "아... 네. 다시 하겠습니다." 그날 7시간 걸렸다. 하나 만드는 데 1시간. 다섯 개 만드는 데 7시간. 수학이 안 맞았다.반복의 지옥 10월, 11월, 12월. 매일 리사이즈. 월요일: 쇼핑몰 배너 4종 화요일: 이벤트 페이지 상단 3종 수요일: SNS 콘텐츠 5종 목요일: 앱 푸시 이미지 2종 금요일: 정산 못 한 것들 몰아서. 손목이 아팠다. 같은 파일을 열고, 복사하고, 사이즈 바꾸고, 저장하고. 피그마 단축키가 꿈에 나왔다. Ctrl+D, Ctrl+G, Shift+A. 자다가 손가락이 움직였다. "이게 디자이너가 할 일인가." 속으로 몇 번 되뇌었다. 부트캠프 동기들 단톡방. 다들 비슷했다. "오늘도 리사이즈 10개ㅠ" "나도... 배너 양산 중..." "이거 언제까지 하는 거야 진짜" 위로가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근데 위로만으론 안 됐다. 이대로 2년, 3년 가는 건가. 뭔가 달라지기 시작 1월. 변화가 왔다. 리사이즈 속도가 빨라졌다. 전엔 4시간 걸리던 게 1시간 반. 뭐가 달라진 걸까. 생각해봤다. 640x640은 정사각형이니까 중심 구도. 720x1280은 세로니까 위아래 여백 활용. 1080x1080은 인스타니까 텍스트는 중앙 아래 80% 지점. 이게 몸에 박혔다. 생각 안 하고 손이 움직였다.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주니야, 이번 건 피드백 없다. 그냥 가자." "네? 정말요?" "응. 잘했어." 그날 저녁.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2500원짜리.반복 속에서 본 것들 2월 지금. 리사이즈가 싫지 않다. 아니, 좋진 않다. 근데 의미 없진 않다는 걸 알았다. 첫째, 비율 감각. 640x640을 100번 만들면 정사각형이 보인다. 1920x1080을 100번 만들면 가로 구도가 보인다. 글자 위치, 이미지 크롭, 여백 배치. 자로 재지 않아도 눈으로 안다. 둘째, 우선순위. 5가지 사이즈를 만들 때 뭐부터 할까. 제일 작은 거부터. 640x640에서 작동하면 큰 사이즈는 쉽다. 작은 화면에서 안 읽히는 글자는 어디서든 약하다. 셋째, 일관성. 같은 디자인을 5개 사이즈로 만들면서 배웠다. '통일감'이 뭔지. 컬러, 폰트, 간격, 무드. 하나라도 어긋나면 다섯 개가 다 따로 논다. 넷째, 속도. 빠르게 만드는 법. 컴포넌트 쓰고, 스타일 저장하고, 단축키 외우고. 전엔 몰랐다. '빨리 하는 것'도 실력이다. 선배의 파일 3주 전. 선배 파일을 열었다. 리사이즈 작업 참고용. 컴포넌트가 정리돼 있었다. 버튼_대, 버튼_중, 버튼_소. 텍스트_타이틀, 텍스트_본문. 여백_상단_60px, 여백_좌우_40px. "와." 5개 사이즈를 30분 만에 뽑았다. 컴포넌트만 교체하면 끝. 물어봤다. "선배, 이거 언제 만드신 거예요?" "음... 1년 차 때? 리사이즈 하다가 빡쳐서." "대박." "너도 만들어. 지금." 그날부터 시작했다. 내 리사이즈 시스템. 파일명: 주니_리사이즈_템플릿_v1 사이즈별 가이드 레이어. 자주 쓰는 컴포넌트. 폰트 스타일 5개. 아직 완벽하진 않다. 근데 시작은 했다. 무의미한 반복은 없다 지금도 리사이즈는 한다. 매일. 근데 생각이 달라졌다. 전엔 '시키는 일'이었다. 지금은 '배우는 시간'이다. 같은 작업을 100번 하면 보인다. '왜 이 사이즈에선 이 구도가 맞는지.' '왜 이 여백에선 답답해 보이는지.' 손으로 배운다. 머리로는 모르는 걸 손은 안다. 어제 회의. 팀장님이 시안을 보시며 물었다. "이거 다른 사이즈로도 전개 가능해?" 선배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말했다. "네, 가능합니다. 세로 버전은 상단 여백 늘리고, 정사각형은 중심 구도로 바꾸면 될 것 같아요." 팀장님이 끄덕였다. "오케이." 선배가 옆에서 웃었다. 회의 끝나고 말했다. "주니 많이 늘었다." "감사합니다." "리사이즈 덕분인 거 알지?" "...네." 인정한다. 리사이즈 덕분이다. 지금의 나 오늘도 리사이즈 3건. 1시간 반 걸렸다. 예전 같으면 4시간. 2시간 반을 벌었다. 그 시간에 뭘 했나. 개인 작업. 포트폴리오에 넣을 시안 스케치. 리사이즈를 빨리 끝내니까 시간이 생겼다. 시간이 생기니까 다른 걸 할 수 있다. 이게 성장인가. 확신은 없다. 근데 작년의 나보단 낫다. 반복이 쌓이면 감각이 된다. 감각이 쌓이면 속도가 된다. 속도가 생기면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면. 그때 진짜 내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아직도 배우는 중 리사이즈 고수가 된 건 아니다. 여전히 막힐 때가 있다. 이상한 비율 나오면 당황한다. 828x1792 같은 거. "이게 뭐야." 선배 파일 보면 아직도 배울 게 많다. 레이어 이름 짓는 법. 컴포넌트 정리하는 법. 변수 쓰는 법. 모르는 게 더 많다. 근데 괜찮다. 작년엔 모르는 것도 몰랐다. 지금은 뭘 모르는지 안다. 그것만으로도 성장이다.리사이즈는 여전히 반복 작업이다. 근데 무의미하진 않다. 100번 하면 손이 기억한다. 1000번 하면 눈이 보인다. 그게 쌓여서 실력이 된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