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페이지 배너 배너 반복 - 이게 성장인가요?

상세페이지 배너 배너 반복 - 이게 성장인가요?

오늘도 상세페이지

월요일 9시 30분. 슬랙에 메시지가 떴다.

“주니씨, 이번 주 상세페이지 5개 부탁드려요. 레퍼런스 공유했어요.”

레퍼런스를 열었다. 지난주에 만든 거랑 똑같다. 사이즈만 다르다. 1200x3000에서 1200x3500으로.

포토샵을 켰다. 지난주 파일을 복사했다. “최종_최종2_진짜최종_1204” 이걸 “최종_1211”로 바꿨다.

이미지 교체. 텍스트 수정. 정렬 확인. 저장. 다음 파일.

30분 만에 첫 번째 완성.

점심시간까지 3개를 더 만들었다.

급식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성장인가.

숫자로 본 2년

입사한 게 2023년 1월이다. 지금 2024년 12월.

만든 상세페이지: 약 240개 만든 배너: 약 480개 리사이즈 작업: 세기 싫다

포트폴리오에 넣을 만한 건: 2개

이직 준비 중인 부트캠프 동기가 물었다.

“너 최근 작업 중에 뭐 보여줄 만해?”

말이 안 나왔다.

상세페이지는 다 비슷하다. 배너도 다 비슷하다. 회사 브랜딩 가이드를 따르니까.

“일은 많이 했는데 보여줄 게 없네.”

동기가 웃었다. “나도.”

웃을 일이 아닌데 웃었다.

선배가 말했다

목요일 오후. 선배한테 시안을 보여드렸다.

“주니야, 이거 지난주랑 똑같은데?”

“네… 레퍼런스가 똑같아서요.”

선배가 모니터를 봤다. 한참 봤다.

“그럼 다르게 만들어봐. 레이아웃이라도.”

”…네?”

“같은 거 100번 만드는 게 능력이 아니야. 더 나은 방법 찾는 게 능력이지.”

회의실에서 나왔다. 다시 앉았다.

더 나은 방법. 뭐가 더 나은 건데.

레퍼런스는 이미 좋다. 클릭률도 괜찮다고 했다. 바꿀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바꾸래.

피그마를 켰다. 유튜브에서 본 레이아웃을 따라 해봤다.

2시간 걸렸다. 평소의 4배다.

선배한테 다시 보여드렸다.

“오, 괜찮은데? 이게 낫다.”

2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칭찬이 들어서.

그런데 금요일에 대표님이 말했다.

“이전 버전이 더 깔끔한데요? 원래대로 해주세요.”

반복의 의미

토요일. 카페에서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2년 동안 만든 파일을 쭉 봤다.

2023년 3월 작업: 디테일이 엉망이다. 여백도 들쭉날쭉. 2023년 9월 작업: 많이 나아졌다. 정렬이 깔끔해졌다. 2024년 6월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퀄리티는 유지. 2024년 12월 작업: …똑같다. 6월이랑.

성장이 멈췄다.

아니, 성장한 건 맞다. 작업 속도. 파일 정리. 커뮤니케이션.

그런데 디자인은.

같은 걸 빠르게 만드는 사람이 됐다. 새로운 걸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핸드폰을 봤다. 디자인 계정 팔로워 32명. 3개월째 그대로다.

올리는 것도 회사 상세페이지 일부분. 리액션 없다.

“이런 거 누가 봐.” 혼잣말이 나왔다.

유명한 디자이너 계정을 봤다. 팔로워 8만.

올린 작업들: 브랜딩, UI, 타이포, 굿즈.

다 다르다. 다 새롭다. 다 멋있다.

나는 상세페이지 240개.

비교가 됐다.

팀장님 면담

화요일. 팀장님이 불렀다.

“주니씨, 2년 됐죠? 내년 목표 같이 얘기해봐요.”

준비 안 했다. 그냥 말했다.

“더 다양한 작업 해보고 싶어요.”

“어떤 거요?”

“상세페이지 말고… 브랜딩이나, 메인 비주얼 같은 거요.”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면 지금 작업부터 잘해야죠. 상세페이지도 브랜딩이에요.”

”…네?”

“매번 같은 레이아웃 쓰는 게 게으른 거예요. 같은 조건에서 더 나은 걸 찾는 게 진짜 실력이고.”

선배가 했던 말이랑 같다.

“지금 주는 일 대충하고 다른 거 하고 싶다는 건, 순서가 바뀐 거예요.”

할 말이 없었다.

“다음 주부터 상세페이지 하나를 A/B 테스트 해봐요. 두 버전 만들어서 클릭률 비교하는 거. 어떤 게 더 잘 나오는지.”

”…해도 돼요?”

“당연하죠. 제안해봐요. 데이터 쌓이면 그게 포트폴리오예요.”

회의실에서 나왔다.

상세페이지가 다르게 보였다. 갑자기.

A/B 테스트 제안

수요일. 마케팅팀 회의.

손을 들었다. 떨렸다.

“저,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마케팅 팀장이 봤다. “어, 주니씨? 어떤 거요?”

“상세페이지를 두 버전 만들어서 클릭률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레이아웃 테스트 같은 거요.”

”…오?”

마케팅 선임이 관심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요?”

준비한 화면을 공유했다. 어젯밤에 2시간 걸려서 만든 자료.

버전 A: 기존 레이아웃 (세로형, 정보 위주) 버전 B: 새 레이아웃 (카드형, 비주얼 위주)

“2주 돌려보고 클릭률이랑 체류 시간 비교해보면, 뭐가 더 효과적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마케팅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요? 이거 개발 공수 얼마나 들어요?”

개발팀 선배(남자친구)가 말했다.

“이 정도면 하루?”

“그럼 다음 주 상품 출시할 때 해봐요. 주니씨가 두 버전 만들고.”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선배가 톡을 보냈다.

“굿. 이게 성장이야.”

2주 후

A/B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버전 B(새 레이아웃): 클릭률 12% 높음, 체류시간 40초 더 긺.

슬랙에 마케팅 팀장이 올렸다.

“주니씨 제안한 레이아웃이 훨씬 낫네요. 다음부터 이걸로 가시죠.”

팀 칭찬. 처음이다.

선배가 자리로 왔다.

“야, 너 이거 외부 공모전에 내봐. ‘데이터 기반 디자인 개선 사례’로.”

”…공모전이요?”

“응. 포트폴리오감 아니야, 이거?”

맞다.

같은 상세페이지인데, 이번엔 다르다.

“반복 작업을 개선한 과정”이 있다. “결과 데이터”가 있다.

그날 저녁. 남자친구랑 퇴근했다.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

“응. 내가 제안한 게 받아들여져서.”

“당연하지. 좋은 아이디어였어.”

“근데 있잖아, 나 계속 똑같은 것만 만드는 줄 알았거든.”

“맞잖아. 상세페이지 매일 만들잖아.”

“근데 그 안에서도 다르게 할 수 있는 거였어. 내가 안 찾아본 거지.”

남자친구가 웃었다.

“그걸 이제 알았네.”

반복과 숙련 사이

금요일 저녁. 개인 작업 시간.

공모전 포트폴리오를 정리한다.

  • 문제 인식: 같은 레이아웃 반복 → 개선점 찾기 어려움
  • 가설 설정: 비주얼 중심 레이아웃이 더 효과적일 것
  • 실행 과정: A/B 테스트 제안 및 진행
  • 결과: 클릭률 12% 개선, 체류시간 40초 증가
  • 학습: 반복 업무 안에서도 데이터 기반 개선 가능

쓰고 보니 그럴듯하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의미 없는 반복”이었다.

지금은 “개선 과정이 담긴 사례”다.

같은 일인데 다르게 보인다.

포트폴리오 파일 이름을 지었다.

“240번의 상세페이지가 가르쳐준 것”

부트캠프 동기 단톡방에 올렸다.

“나 공모전 낸다.”

반응이 빨랐다.

“오 뭔데?” “주니 드디어?” “보여줘봐”

초안을 공유했다.

“미쳤다. 이거 당선감인데?” “데이터까지 있으면 진짜 강한데.” “나도 회사에서 이런 거 해봐야겠다.”

핸드폰을 내려놨다.

인스타 디자인 계정을 열었다. 팔로워 32명.

이번 주 작업을 올렸다. A/B 테스트 과정을 정리해서.

30분 만에 좋아요 12개.

댓글 2개.

“오 이런 접근 좋네요” “주니어가 이런 제안까지 하다니, 멋있어요”

작다. 그래도 반응이 있다.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슬랙을 켰다.

“주니씨, 이번 주 상세페이지 4개 부탁드려요.”

레퍼런스를 열었다. 지난달에 만든 거랑 비슷하다.

예전 같으면 한숨 나왔다. 지금은 다르다.

“기존 레퍼런스 참고해서, 개선안도 하나 만들어볼게요. 비교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마케팅 선임이 답했다.

“오 좋죠. 기대할게요.”

포토샵을 켰다. 그리고 피그마도 켰다.

기존 방식으로 하나. 새 시도로 하나.

시간은 두 배 걸린다. 괜찮다.

선배가 지나가다 봤다.

“두 개 만들어?”

“네. 비교하려고요.”

“굿. 그게 맞아.”

점심시간. 급식 먹으면서 생각했다.

여전히 상세페이지를 만든다. 매일.

여전히 반복이다.

그런데 다르다.

“같은 걸 빠르게”에서 “더 나은 걸 찾으며”로 바뀌었다.

이게 성장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봤다.

공모전 제출 완료 메일이 왔다.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결과는 1월 중 발표됩니다.”

떨어질 수도 있다. 괜찮다.

중요한 건, 낼 게 생겼다는 것.

남자친구한테 톡을 보냈다.

“냈어. 공모전.”

“ㅊㅊ 결과 나오면 밥 사줄게”

“결과 상관없이 사줘”

“ㅋㅋㅋ 그래”

집에 도착했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2년 전 이맘때가 생각났다.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기쁘고 떨렸다.

6개월 후. “매일 똑같은 일만…” 지루했다.

1년 후.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불안했다.

2년 차. 지금.

“반복 안에서 다르게 하는 법을 안다.” 조금 자신감 생겼다.

성장이 뭔지 몰랐다.

거창한 프로젝트를 해야 성장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같은 일을 다르게 보는 것. 개선점을 찾는 것. 데이터를 쌓는 것.

그게 성장이었다.

상세페이지 240개가 쓸모없는 게 아니었다.

240번의 기회였다.

내일도 상세페이지를 만든다.

241번째다.

이번엔 또 뭘 다르게 해볼까.

그 생각을 하니까 월요일이 기대된다.

신기하다.


반복이 정체가 아니라 재료였다.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였다.